낮이면 35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정부와 각 지자체는 무더위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긴급 상황을 대비해 사전 점검과 대응책 마련에 나선 상황입니다. 문제는 이 불볕더위가 점점 항구화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런 폭염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닙니다. 아시아와 유럽 등 그야말로 전세계가 폭염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어떤 나라가, 어떤 피해를 겪고 있을까요? 토마토Pick이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폭염 사태를 살펴봤습니다.
무더위가 부른 비극
메카 성지순례서 참사
올해 폭염으로 피해를 본 대표적인 집단이 바로 무슬림입니다. 이슬람의 최고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찾는 정기 성지순례(하지) 기간에 대규모의 온열 질환자가 발생했는데요. 복수의 아랍 외교관을 인용한 AFP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14일 하지 시작 이후 이집트인 최소 323명, 요르단인 최소 60명 등 총 550명이 숨졌습니다. 이들 중 대다수가 온열 질환으로 사망했습니다. 하지는 통상적으로 이슬람력 12월 7~12일 치러집니다. 올해 하지는 여름과 겹쳤고, 이 기간에 기온이 급상승하면서 피해자가 대량 발생한 것인데요. 사우디 국립기상센터에 따르면 17일 메카 대사원 마스지드 알하람의 기온은 섭씨 51.8도를 기록했습니다. 지난달 발표된 사우디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우디의 온도는 10년마다 섭씨 0.4도씩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후변화의 직격타를 맞는 양상입니다.
‘최악 폭염 올림픽’ 가능성
파리 덮친 무더위에 위기
7월 개막을 앞둔 파리 올림픽이 역대 최악의 폭염 속에서 치러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7월 하순 파리의 기온은 종종 섭씨 40도를 넘나들며, 열대야도 1주일 정도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지난 17일(현지시각) 미국 CBS방송은 “(2020년 치러진) 도쿄올림픽이 역사상 가장 더운 올림픽이었지만, 이번 파리올림픽 폭염 위험에 관한 새 보고서는 올해가 훨씬 더 더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고 우려했습니다. 보도에서 인용된 보고서에 따르면 파리는 1924년 하계올림픽이 열린 이후 이 시기의 평균 기온이 약 섭씨 3.1도 상승했고 폭염의 빈도나 강도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여름 프랑스에서만 약 5000명이 무더위로 사망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와중에 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 측은 친환경 올림픽을 표방해 선수촌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일각에서는 올림픽 기간 더위로 ‘생지옥 파리’가 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미국, 유럽, 중국도
지구촌 전체가 폭염
이러한 무더위는 파리나 사우디 등 일부만의 일이 아닙니다. 세계 곳곳이 폭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미국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기상청(NWS)은 18일(현지시각) 미 중부지역부터 동부지역까지 폭염이 이어져 여러 도시가 수십 년만에 최고 기온을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는 전날 기온이 34.4도까지 오르며 1994년 기록한 최고 기온을 넘어섰는데요. 시카고도 17일 오헤어 국제공항 인근 기온이 36.1도까지 올라 이전 최고치였던 1957년 35.6도를 경신했습니다. NWS의 기상학자 마크 체나드는 디트로이트·필라델피아·뉴햄프셔·코네티컷·메인의 도시들도 앞으로 며칠 동안 기록적인 기온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또 이번 더위가 기후변화로 인한 것이라고 말하기는 이르지만 폭염이 역사적 평균보다 더 일찍 발생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리스 :유럽의 그리스에서도 4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디언의 17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그리스는 9일 동안 6명의 관광객이 사망 또는 실종됐는데요. 평소보다 높은 기온 속에 하이킹을 하다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도 :인도 북부지역의 폭염은 지난달 17일 이후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낮 최고기온이 45도를 웃돌기도 했는데요. 지난 17일 뉴델리에서 열사병 증세로 입원한 60세 여성이 다음날 오전 사망하는 등 각종 사건사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정부 통계자료를 인용한 로이터에 따르면 3월부터 5월까지 약 2만5000명이 열사병 증세로 입원했고, 이중 56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중국 :중국은 최근 베이징 등 북부 지역이 40도 안팎에 이르는 폭염을 겪고 있습니다. 중국 기상국에 따르면 지난 13일 허난성과 허베이성 일부의 낮 최고 기온이 42도 안팎까지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허베이성·산둥성·허난성·산시성·안후이성 등은 차폐물이 없는 상태에서 지표면의 온도를 측정하는 ‘지표 온도’가 70도에 달했습니다. 이는 맨발로 걸을 경우 화상에 입을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 아니다
서울 올해 첫 폭염 특보
우리나라에도 폭염이 닥쳤습니다. 지난 19일 기상청은 올해 처음으로 서울에 폭염주의보를 발령했는데요. 서울 외에도 경기도와 강원도, 충남, 경남 등 전국 곳곳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졌습니다. 대구 등 경북지역은 18~19일 한낮 최고기온이 36~37도를 오가는 등 찜통더위가 이어졌습니다. 경북 경산의 도로분리대가 폭염으로 인해 쓰러지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올해는 지난해 시작된 엘니뇨(적도 부근의 해수 온난화)가 끝나고 라니냐(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낮아지는 현상)로 전환될 전망인데, 라니냐로 전환될 때 기온이 오르는 경향이 나타나므로 올 여름은 특히 더울 것으로 전망됩니다. 정부도 폭염 대응에 나섰는데요. 당정은 지난 16일 고위급 협의회를 통해 △취약층 에너지바우처 5만3000원 지원 △에너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 360만 가구에 지난해 인상된 전기요금 1년 유예 △경로당 냉방비 금액 6만원 확대(11만5000원→17만5000원) △119 폭염구급대 운영 △6월24일~9월6일 전력수급 대책기간 지정 등의 대응책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폭염에 경제도 들썩
‘히트플레이션’ 우려
전 세계가 역대급 폭염으로 시름하면서 경제도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이른바 ‘히트플레이션(열+인플레이션)’으로, 주요 작물의 생산에 차질이 생기고 물류망까지 직격탄을 맞는 것인데요. 폭염과 가뭄으로 로부스타 원두 등 각종 음식 원재료의 가격이 상승하고, 철로와 비행기 활주로 등이 손상돼 물류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입니다. 에이드리언 빌랄 하버드대 연구원과 디에고 칸지그 노스웨스턴대 연구원이 작성한 ‘기후변화의 거시경제 영향(The Macroeconomic Impact of Climate Change)’이란 연구 결과를 지난달 가디언이 보도했는데요. 이에 따르면 지구 온도가 1도 상승할 때마다 전 세계 GDP가 최대 12%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전세계 폭염 장기화
기후위기도 가속화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염 현상 중 가장 두려운 점으로 꼽히는 게 바로 '폭염의 장기화'입니다. 세계는 현재 ‘역대 가장 더운 달’을 12개월 연속 달성하고 있는데요. 폭염이 찾아오는 계절이 점점 더 빨라지고, 더 장기화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폭염의 원인은 강한 엘니뇨 현상으로 해수 온도가 높아졌기 때문인데요. 라니냐 현상으로 해수 온도가 낮아지더라도 폭염 등 이상기후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는 게 주된 관측입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을 막는 게 역부족이라는 건데요. 인류가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과연 인류는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