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주년 광복절이 코앞이지만,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현안을 보면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영령 앞에 고개 들기가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대일 굴욕외교 논란이 벌어지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극우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의 역사 왜곡 시도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독립기념관 등 대한민국의 정신과 가치를 지켜야 할 주요 기관을 이끄는 자리에도 뉴라이트 인사들이 속속 내려앉고 있습니다. 토마토Pick이 윤석열 정부 곳곳에 퍼지고 있는 ‘친일 바이러스’를 진단했습니다.
‘대일 굴욕외교’의 상징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일본이 조선인 노동의 ‘강제성’을 인정하지 않는데도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찬성해 ‘대일 굴욕외교’의 끝판왕을 보여줬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사도광산 등재에 앞서 외교부는 “일본이 전체 역사를 반영하기로 약속했고, 실질적 조치를 이미 취했다”고 했지만, 정작 일본의 전시물에는 ‘강제동원’, ‘강제노역’ 등의 표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죠. 외교부는 야당의 항의를 받자 “전시 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사료 및 전시 문안을 요구했으나 일본이 수용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수용하지 않았다면 등재에 반대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죠. 이 과정에서 외교부는 대국민 설명자료 내용을 조작했다는 의혹마저 받고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인도에서 열린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의에서 일본측 수석대표가 “일본은 모든 노동자가 처했던 가혹한 노동 환경을 설명했다”고 밝힌 대목을 외교부가 보도자료에 “일본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처했던 가혹한 노동환경을 설명했다”는 내용으로 둔갑시켰다는 의혹입니다. 이런 사실을 지적한 조정식 민주당 의원은 ”단어 왜곡을 뛰어넘어 대일 굴종외교를 감추고자 벌인 국민 기만이자 우롱“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주요 역사·교육기관 수장
“친일 뉴라이트 인사가 장악”
지난 6일 정부가 김형석 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을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하면서, 결국 터질 게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광복회가 ‘뉴라이트 계열’이라고 비판하는 인사인데요, 독립기념관 수장 자리에 어떻게 ‘친일파로 매도된 인사들의 명예회복에 앞장서겠다’는 사람을 앉힐 수 있냐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야당 역시 “김 관장은 ‘1945년 8월15일이 광복절이 아니다’, ‘일제강점기가 도움이 됐다’, ‘일제시대 우리 국민은 일본 신민이었다’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독립기념관장이 될 수 있냐”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결국 광복회와 독립운동가 단체들은 김 관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정부의 광복절 기념행사에 불참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강한 반발은 단순히 이번 독립기념관장 사례 하나 때문이 아닙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국사편찬위원장, 동북아재단이사장, 국가교육위원장 등 역사를 바르게 연구해 이를 후대에 전해야 할 주요 기관 책임자들이 현 정부 출범 이후 이른바 ‘뉴라이트’ 일색으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지난달 30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으로 임명된 김낙년 동국대 명예교수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했던 뉴라이트계 학자로 분류됩니다. 2019년 출간된 책 ‘반일 종족주의’의 공동저자인데, 이 책은 징용과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고 독도를 한국 영토라고 볼 학술적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등의 주장을 담아 큰 논란이 벌어진 바 있습니다. 김 원장은 이 책에서 식량 수탈과 일본의 지배 방식 부분을 저술했는데요. 광복회 등은 성명에서 “김낙년씨는 일제에 의해 자행된 식량수탈을 수출로 미화한 장본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국사편찬위원장 :지난 5월 초 16대 국사편찬위원장으로 임기를 시작한 허동현 경희대 교수도 뉴라이트 계열 역사학자로 알려져 있으며, 박근혜 정부 국정교과서 편찬에 참여했습니다. 허 위원장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공산주의 세상을 꿈꾼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호국 강성의 요람인 육사에 존치된다는 것은 육사 생도 입장에서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지난 1월 교육부 산하 동북아역사재단 신임 이사장으로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명예교수가 취임했습니다. 동북아 지역 관련 연구를 하는 자리에 서양사 전공자가 임명된 것도 문제였지만, 박 이사장이 평소 뉴라이트 성향의 발언과 활동을 해온 점이 논란이 됐습니다. 친일파 윤치호를 옹호하는 책을 쓰기도 했던 그는 취임 뒤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이 과거를 사과하지 않는다는 기성세대의 인식을 젊은 세대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국가교육위원장 :윤석열 정부는 지난 2022년 9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중장기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국가교육위원회 초대 위원장에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을 임명해 학계와 교육계의 반발을 산 바 있습니다. 이 위원장은 2015년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 등을 맡는 등 친일과 독재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박근혜 정부 역사 국정교과서 추진 주역이었습니다. 당시 교과서는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해 1919년 수립된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한다는 비판을 받았고, 독립운동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친일파와 관련한 서술을 줄였다는 지적도 받았었죠.
KBS, 이승만 미화 다큐 방영
‘테러리스트 김구’ 책 출간도
정부의 이런 분위기 탓인지, 공영방송 KBS는 역사왜곡 비판을 받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광복절에 맞춰 방영하기로 해 우려를 키우고 있습니다. 논란이 된 영화는 이승만 전 대통령 일대기를 다룬 <기적의 시작>인데요, 이 전 대통령이 친일파와 독재자로 평가받아서는 안 되며, 건국은 이 전 대통령의 위대한 업적이라는 게 핵심 내용입니다. 이 영화 제작을 지원한 단체가 일본의 식민지배 역사를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는 뉴라이트 계열의 대한역사문화원이라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출판계에서는 광복절에 맞춰 왜곡된 역사 인식으로 가득 찼다고 비판을 받는 ‘테러리스트 김구’라는 책이 출간됩니다. 저자 정안기씨 역시 <반일 종족주의>의 공동저자입니다. 저자는 이번 책에서 “한국인들이 환상하는 김구는 종북주사파가 만들어낸 역사적 허상에 불과하다. 김구를 두고 ‘민족의 구원자’ 혹은 ‘자유와 통일의 메시아’라고 환상하고 성인화하는 것은 지독한 정신분열이자 끔찍한 위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주요 연구기관 독식이 문제
광복절에 맞춰 뉴라이트의 핵심 주장을 담은 책과 영화가 등장하고 이를 공영방송에서 대놓고 다루는 현상은 현 정부의 역사인식 및 기조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학술기관의 수장들이 모조리 뉴라이트 인사로 채워지니, 이런 분위기가 점차 사회 다른 영역으로 퍼지는 셈입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이를 "형체가 없는데 피해가 막심한 연탄가스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학문의 자유를 보장받고 이런저런 주장들을 펼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다고 봅니다. 왜곡된 주장들은 공론의 장에서 걸러지고 평가받으면 되는 일이지요. 하지만 이런 왜곡된 주장을 일삼는 인사들이 주요 연구 기관 요직에 앉아 세금 써가며 관련 연구도 하고 책 쓰는 것을 지원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가 아닐까요? 정부의 향후 행보에 대해 좀 더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