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Pick!
한 유튜브 채널이 2004년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여자 중학생 집단 성폭행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했습니다. 이러한 '사적제재'는 여론의 큰 관심을 받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여러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14일 토마토Pick에서는 밀양 성폭행 사건을 둘러싼 사적제재 논란과 부작용, 그리고 예고된 정부의 대응 등을 정리했습니다.
유튜브 채널 '△△ △△△'
'밀양 사건' 주동자 신상공개
유튜브 채널 ‘△△ △△△’ 운영자는 지난 1일부터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 가해자들의 이름과 나이, 직업 등 신상 정보가 담긴 내용을 잇따라 공개했습니다. 최근까지 해당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된 남성 다수와 이를 옹호했던 여성 1명의 정보도 함께 드러났는데요. 이후 운영자 측은 밀양 사건 가해자 44명의 신상을 모두 공개하겠다며, 누리꾼들의 제보를 독려했습니다. 신상 정보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으로 급속도로 퍼지면서 가해자들의 과거 행적까지 직간접적으로 파헤쳐졌습니다.☞관련기사
밀양 성폭행 사건, 어떻게 끝났나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은 2004년 12월 밀양지역 고교생 44명이 울산 여중생 1명을 1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입니다. 당시 울산지검은 가해자 중 10명(구속 7명, 불구속 3명)을 기소했고 20명은 소년원으로 보냈습니다. 문제는 44명 중 형사처벌을 받은 가해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가해자 대다수가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당시 가해자들은 1986년~1988년생 고등학생으로 알려졌습니다.☞관련기사
신상 공개 여파
신상 공개 영상은 수백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는데요. 첫번째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 A씨가 일하던 경북 소재 식당은 '별점 테러'가 이어지자 업주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결국 폐업을 결정했습니다. 또다른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 B씨도 외제차 딜러로 근무하는 사실이 알려지며 회사에서 해고됐습니다. 세 번째로 신상이 공개된 가해자 C씨는 근무중인 대기업에서 임시 발령 조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관련기사이러한 사적 제재가 누리꾼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이유는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공감대가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밀양 사건 피해자는 1년간 이어진 집단 성폭행으로 신체적·정신적으로 피해를 입었지만, 44명의 가해자들은 전과 기록조차 남지 않았기 때문이죠.☞관련기사
영상 공개로 촉발된
사적 제재의 부작용
-무고한 피해 사례 :사적 제재로 인해 관련 없는 이들의 피해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밀양시의 한 네일숍이 '가해자의 애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지목되면서 누리꾼들이 업체 리뷰를 통해 욕설과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가해자와 가게가 무관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네일숍 주인은 신상을 공개한 유튜버를 업무방해 등 혐의로 처벌해달라고 경찰에 진정을 냈습니다.☞관련기사또 밀양 사건 6번째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은 “성폭행에 가담하지 않았다. 가해자와 같은 학교만 다녔을 뿐”이라며 자신의 범죄·수사경력 회보서를 공개했습니다. 그러나 이 남성은 결국 재직 중인 회사로부터 대기 발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관련기사
-존중받지 못한 피해자의 의사 :이번 사적 제재가 피해자의 의사와 전혀 무관하게 이뤄졌다는 점도 논란이 됐는데요. 신상을 공개한 측은 지난 5일 커뮤니티 공지를 통해 “피해자 가족 측과 메일로 대화(를) 나눴고, 44명 모두 공개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를 지원해온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 측은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에 대한 영상을 게시되기 전까지 해당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사전 동의를 질문받은 바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오히려 상담소 측은 “해당 영상이 올라온 후인 3일 영상 삭제 요청을 했다”고 덧붙였습니다.☞관련기사
-사적 이득 :피해자의 동의 없이 제작한 영상이 유튜버의 큰 수익으로 돌아오면서 사적 제제가 아닌 사적 이득을 위해 밀양 사건 가해자를 공개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유튜브 콘텐츠 조회수가 수입으로 직결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인데요.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의 일상 회복, 피해자의 의사 존중과 거리가 먼, 갑자기 등장한 일방적 영상 업로드와 조회 수 경주에 당황스러움과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습니다.☞관련기사
전문가들 우려
"2차 가해", "사회적 문제"
전문가들도 이런 식의 가해자 신상공개가 피해자에게 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위험한 2차 가해 행위"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가해자 신상 공개는 가해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 신상 노출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이것은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행위”라고 강조했습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도 “피해자의 상황과 의사를 확인해 피해자 권리를 보장하고 가해자에게도 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투명하고 민주적인 절차가 마련된 상태에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소장은 이어 “사적 제재이든 수사기관과 법원이든 처벌하는 쪽에 과도한 권한이 부여되면 피해자의 주체적 참여나 결정권은 축소되고, 이는 더 나은 사회 변화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관련기사
-"시스템 한계, 사회적 문제" :일각에서는 형사·사법 시스템 체계의 한계를 명분으로 촉발된 여론재판인 만큼,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봐야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이 피해자를 보호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가해자들의 보호처분만 이뤄졌다"며 "그 잘못된 판단이 20년이 지나서까지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는데요. 배상훈 프로파일러도 “공적인 시스템이 공적인 정의를 보여주지 못하니까 사적 구제로라도 하려고 하는 것인데, 사회적 문제로 봐야한다”고 설명했습니다.☞관련기사
유튜버, 영상 일부 삭제
방심위 "논란 채널 심의 착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이르면 13일부터 문제가 된 유튜브 영상 4건을 회의 안건으로 올려 심의할 예정입니다. 해당 채널의 불법성 여부를 검토하기 위함인데요. 거센 논란을 의식한 탓인지 해당 유튜버는 관련 영상 일부를 삭제 처리했습니다.☞관련기사그러나 경찰은 가해자 신상을 폭로한 유튜브 운영진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설 계획인데요. 고소인들은 운영진이 당사자 동의 없이 무단으로 개인 신상을 폭로해 명예가 훼손됐다는 취지의 고소장을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명예훼손·업무방해 등 혐의로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하는 한편, 필요에 따라 강제수사도 진행할 예정입니다.☞관련기사
사적제재는 언뜻 사법체계가 커버하지 못하는 빈틈을 메우는 약자의 저항 방식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적제재가 대중의 일시적 환호는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정당성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기준이 모호한 자의적 처벌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 또 다른 범죄의 자기정당화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 무고한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사건처럼 특정 인물이 금전적 이득을 취하거나 피해자의 의견이 존중되지 않은 경우에는 그 피해가 더 심각합니다. 범죄 피해자를 위하는 척 또다른 가해자를 만드는 방식이 '정의'란 이름으로 평가 받아선 안되겠습니다. 하나 더, 해당 유튜버뿐 아니라, 유튜브 내용을 마구잡이로 인용해 '2차 가해'에 동참한 일부 언론의 조회수 장사도 자성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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