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가 야심작 <백설공주>의 개봉을 앞두고 시사회를 진행했는데 오히려 우려만 커졌습니다. 굴지의 기업 디즈니에 어울리지 않는 조용한 시사회였기 때문인데요. 사실 디즈니는 동화 백설공주를 수차례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신작은 유달리 호불호가 갈리는데요. ‘백설’(Snow white)과 다른 라틴계 여배우가 주연 자릴 꿰찼기 때문이죠. 토마토Pick이 이런 논란의 배경에 깔려 있는 PC주의와 이와 관련된 여론의 흐름 등을 짚어봤습니다.
백설공주, 조용한 시사회
백설공주 시사회는 지난 15일(현지시각)에 있었습니다. AFP 통신 등 현지 언론은 시사회가 주연 배우들의 레드카펫 인터뷰도 생략한 채 조용히 진행됐다고 설명했는데요. 앞서 진행된 유럽 시사회 역시 언론매체를 거의 초청하지 않고 조용하게 진행했습니다. 이는 영화 캐스팅 라인업이 정해진 후부터 줄곧 이어진 논란들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되는데요. 상술했듯 백설공주라는 원작의 인물과 전혀 다른 인물이 캐스팅됐기 때문입니다. 콜롬비아 출신 어머니를 둔 라틴계 배우 레이첼 제글러가 백설공주 역을 맡았는데, 일부 디즈니 팬들과 보수진영에서 외모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이죠.
배우 본인도 이에 반발해 논란을 키웠는데요. 제글러는 자신의 SNS에 “그래, 나는 백설공주지만 그 역할을 위해 내 피부를 표백하진 않을 것”이라며 맞섰습니다. 오히려 1937년 만들어진 디즈니의 백설공주 애니메이션 내용이 “이상하다”고 주장하기까지 했죠. 배우와 팬층이 서로에게 반감을 가진 채 시작한 것입니다.
'화이트 워싱'과 ‘블랙워싱’
수년 전만 해도 헐리우드 영화는 숱한 ‘화이트 워싱’(White washing)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동양인이나 흑인 등 유색인종을 백인으로 바꿔 캐스팅하는 것인데요. 백인 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동양인 캐릭터를 연기한 것, <라스트 에어벤더>의 주요 캐릭터 대부분이 백인이 된 것 등의 논란이 대표적이죠. 이는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을 받았는데요. 최근에는 반대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히려 백인 캐릭터를 다른 인종이 맡는 경우가 대거 늘고 있죠. 상술한 백설공주가 그랬고, 같은 디즈니에서 만든 <인어공주>도 그랬습니다. 심지어 인어공주는 지금보다 더 큰 질타를 받았죠.
이는 디즈니에 국한되는 건 아닙니다. 지난 2023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 클레오파트라 역에 흑인 배우가 캐스팅돼 논란이 일었는데요. 분개한 이집트가 자체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미국 덮친 PC주의
화이트워싱은 신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백인이 다른 인종보다 낫다는 백인 우월주의가 기저에 깔려 있었습니다. 이런 인종차별적 인식이 비판을 받으면서 현재는 차츰 사그라들고 있죠. 반면 블랙워싱은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에 기반합니다. 초기에는 흑인을 대중문화에서 조명하자는 취지였지만, 이것이 과해지면서 어떤 경우엔 역차별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PC주의는 성적 지향, 인종, 장애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집단에 대해 차별적 표현을 쓰는 걸 지양하고 상호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인데요. 넓게 보면 블랙워싱도 이에 포함됩니다. 최근에는 미디어 콘텐츠만이 아니라 게임 등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는데요.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에서 대뜸 성소수자 캐릭터가 급증한다거나, 다른 피부색의 인물을 넣기 위해 고증을 포기하는 일이 빈번했죠. 내가 좋아하던 게임 캐릭터가 대뜸 성소수자가 된다거나, 예쁜 외모가 비현실적이라며 미형 캐릭터가 대폭 줄어드는 일도 생겼고요. 상술한 <백설공주>, <클레오파트라>도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역사와 맞지 않는 캐스팅이었습니다.
자유 vs 역차별 논란
PC주의는 취지만 놓고 보면 비판하기 어렵습니다. 소수자를 지키고 차별을 철폐하자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PC주의의 강요는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PC주의의 강요가 작품의 한계를 만들고 있고, 역사적 고증을 훼손시키기도 했으니까요. 화이트 워싱이 논란이었다면 같은 논리로 블랙 워싱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는 실정입니다.
위기 맞은 PC주의
최근 미국사회에서는 PC주의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팽배해졌는데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추진한 DEI정책(다양성·형평성·포용성)이 역차별이라며 철폐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성적 지향, 인종 같은 걸 챙기느라 정작 중요한 개인의 능력을 놓친다는 것이죠. 한때 유망한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하던 정책이 정권 교체와 함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DEI정책을 추진하던 기업들도 정권 교체와 함께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습니다. 여성, 히스패닉, 장애인 등의 직원 비율을 50%까지 높이겠다던 메타(META)가 이를 재검토하는 게 대표적이죠. 그 외에도 월마트, 할리 데이비슨 등 기업들이 DEI정책을 축소 및 폐기하고 있습니다. PC주의가 트럼프 임기 시작과 함께 전에 없던 위기를 맞은 셈이죠. PC주의가 처음 추구했던 최초의 가치를 지키면서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해 보이는데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시민들의 공감을 받을 만한 방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