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시리아 반군이 아사드 정권을 몰아내고 정권교체를 이룩한 지 수개월이 흘렀습니다. 정권교체를 주도한 하야트타흐리르알샴(HTS)은 타국과의 외교관계 재정립 및 자국 정치 안정화에 착수했는데요. 서방세력들도 일단은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시리아의 상황이 불안하다고 진단하고 있는데요. 토마토Pick은 시리아 내전 종식 후의 상황과 향후 과제 등에 대해 진단했습니다.
온건하고 열린 정책 추진
과도정부의 이미지 쇄신
아사드 정권을 몰아내고 들어선 과도정부는 이미지 쇄신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과도정부의 대통령 아흐메다 알샤라는 여성에게 히잡을 강요하지 않는 온건한 정책을 냈으며, 최근에는 헌법 초안을 만들기 위한 위원회에 여성 1명을 포함하기도 했습니다. 이슬람 원리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름 온건하고 열린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죠. 미국도 이런 점을 높이 사 알샤라 대통령에게 걸렸던 현상금 1000만 달러(약 144억원)를 해제했습니다. 유럽연합(EU) 역시 시리아 재건을 명분으로 지난달 에너지, 운송 부문과 관련된 각종 제재들을 유예하기로 했죠. EU는 과도정부에 대해 “알아사드 정권의 몰락은 시리아 국민에게 희망적인 새 시대의 시작을 열었다”고 평가했는데요. 14년 만의 내전 종식이 희망적인 변화로 이어지길 바라는 기대감이 드러난 대목입니다. 나아가 과도정부의 이미지 쇄신이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죠.
과거 극단주의 이력에 우려
그러나 여전히 시리아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습니다. HTS는 본래 극단주의 조직인 알카에다에서 떨어져나온 분파로, 알카에다와 협력하는 등 극단주의적 행보를 걸어온 이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알샤라 대통령에게 현상금이 걸렸던 사실부터가 이를 입증하고 있죠. 한 마디로 독재정권이 나간 후 극단주의 정권이 들어선다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BBC에 따르면 지난 1월 시리아 과도정부는 교과서와 교육과정 내용 중 일부를 고쳤는데요. ‘나라를 지킨다’는 구절을 ‘알라를 지킨다’로 교체하거나 진화론과 빅뱅 이론이 사라지는 등 이슬람주의 성향이 짙어졌습니다. 앞서 시리아 과도정부는 자국 내 모든 종파를 포용하겠다고 했지만 국제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면 약속의 확실한 이행이 필요한데요. 아직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미통합 반군, 내부 갈등 요소
시리아에서 내전이 시작된 것은 독재정부의 횡포가 크게 한몫했지만, 내전의 장기화는 여러 세력의 이합집산 때문이었습니다. 종파와 민족 등에 따라 수많은 반군이 중구난방으로 들고 일어섰죠. 지금은 HTS가 정권을 몰아냈지만 이들 반군이 모두 통합된 것도 아닙니다. 애초에 설립 취지부터 다르니까요. 과도정부가 종파 포용을 약속하면서도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무기를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배경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시리아 내에서 쿠르드족 분리독립 운동을 벌이는 시라아민주군(SDF)은 여전히 정부와 이견을 보이고 있죠. SDF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세력이라 과도정부가 함부로 손을 대기 껄끄러운 상황입니다.
쿠르드족 독립, 또다른 '불씨'
다른 종파의 포용을 약속한 과도정부가 SDF와 이견을 보이며 갈등을 겪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배경엔 HTS의 뒷배가 되어준 튀르키예가 있기 때문인데요. 튀르키예는 HTS가 활동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직·간접적 지원을 해왔습니다. 시리아 정권 교체 과정에서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 튀르키예가 SDF를 철저히 배척하고 있다는 건데요. SDF가 쿠르드족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300만이 넘는 쿠르드족은 시리아와 튀르키예 등 각지에 흩어져 있는데요. 이들이 분리독립할 경우 튀르키예는 많은 영토와 인구를 상실할 게 자명합니다. 때문에 쿠르드의 독립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죠. 2019년에는 독립 시도를 막기 위해 아예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자치정부 로자바를 침공했을 정도입니다. 튀르키예의 쿠르드족 경계는 현재까지도 여전한데요. 지난달에는 튀르키예군이 시리아 동북부 알하사주 샤디디 지역에 공습을 가해 쿠르드군과 민간인 12명이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치고 올라오는 이스라엘
북쪽이 튀르키예와 쿠르드족의 갈등으로 혼란스럽다면, 남쪽에는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사드 정부가 축출된 직후인 지난해 12월 골란고원 비무장지대를 통과, 시리아군 점령지였던 헤르몬산을 점거했습니다. 이후 현재까지도 군사를 빼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과도정부에 시리아 남부 전체를 비무장지대로 정하라며 압박하고 있죠. 그때까지 군대를 무기한 주둔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유엔(UN)까지 나서 시리아에 대한 공습을 중단하라고 했지만 이스라엘은 막무가내로 버티고 있습니다.
새 뇌관 되거나, 균형 잡거나
시리아는 튀르키예와 이스라엘, 이란 등이 접한 중동의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그런 만큼 여러 세력이 난립했고, 각국이 반군을 후원하면서 시리아는 주요국들이 대리전을 치르는 장이 됐죠.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끈끈하게 얽히고설켰습니다. 시리아로서는 어느 세력이든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죠. 과도정부가 과연 복잡하게 얽힌 국제정세의 실타래를 풀고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중동의 수많은 나라들이 그랬듯 또다른 갈등에 휩싸일까요? 과도정부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