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대중들의 시선이 가장 많이 쏠린 이슈는 아마도 비혼 출산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델 문가비씨가 결혼하지 않은 채 출산을 한 것인데요. 당사자는 “축하한다는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고 했고, 아이의 아빠인 배우 정우성씨도 ‘아버지로서 아들에 대한 책임은 끝까지 다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번 이슈는 쉬이 일단락되지 않고 이런저런 후속 뉴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명 연예인을 둘러싼 가십의 측면도 없지 않지만, 한국사회의 가족 구조에 관해 다시 들여다 볼 계기가 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토마토Pick이 국내 비혼 출산의 현주소와 변화하고 있는 가족 관념 등을 짚어봤습니다.
강고한 ‘정상가족주의’
이번 비혼 출산 소식이 대중에게 알려진 직후 아이의 부친인 정우성씨에 비판적인 여론이 많았습니다. 각자 비판의 이유는 조금씩 결이 달랐지만, 거칠게 정리하자면 ‘한참 나이가 많은 연상의 남성이 젊은 여성을 임신시킨 후 책임 지지 않은 것 아니냐’는 것이었죠. 여전히 사회적 통념은 '자녀 출산은 온전히 가정이 갖춰진 상태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부부가 사랑하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축복이라는 식이죠. 자녀의 양육은 부모 공동의 책임이며, 가족을 구성하는 것은 그 책임에 대한 일종의 약속이라는 인식이 기저에 있습니다. 정우성씨에 대한 비판적 기사와 함께 양육비, 재산 분할 등이 함께 거론되는 것도 이런 인식을 방증합니다. 정씨가 그동안 누려왔던 반듯한 배우로서 이미지도 이런 보수적 정서를 자극한 이유로 꼽힙니다.
국내 ‘그사세’…해외 보편화
정우성씨는 지난달 청룡영화제에서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영화제에 참석한 연예인들은 박수로 호응했지만, 정씨에 비판적이었던 누리꾼들은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라고 비난했습니다. 대중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다는 불만입니다.
하지만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사정이 좀 다릅니다. 유명인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비혼 출산에 대한 인식도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연예인의 경우 정씨와 같은 사례는 수없이 많죠. 유명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는 다른 여성과의 사이에서 첫째를, 대리모를 통해 둘째와 셋째를, 현재 약혼자와의 사이에서 넷째와 다섯째를 품에 안기도 했습니다.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은 50세의 나이에 스스로 원해 비혼 출산했으며, 헐리우드 배우 조디 포스터는 정자 기증을 통해 자녀를 출산했습니다. 이른바 자발적 비혼모인데요. 국내에서는 연예인 사유리가 정자를 기증받아 2020년 아들을 출산한 바 있습니다.
연예계 사례를 들긴 했지만, 실제 다른 나라의 비혼 출산 현황을 보면 상당히 광범위하고 일상적인 일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202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비혼 출산율은 41.9%입니다. 특히 프랑스(62.2%), 스웨덴(55.2%), 영국(49.0%), 미국(40.5%) 등 서구권의 선진국으로 취급되는 나라에서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국내 인식도 변화 기류
반면 저출산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와 일본은 비혼 출산율이 서구권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은데요.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 4%대로 진입했습니다. 일본이나 우리나라가 유교문화에 입각한 아시아권의 전통적 가족관에서 아직은 자유롭지 못한 탓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최근 실제 통계나 비혼 출생을 바라보는 인식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8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출산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비혼 출생자는 1만900명으로 전체 출생아의 4.7%를 차지했습니다. 이 수치가 계속 상승세인데요. 2018년 2.2%에서 2022년에는 3.9%, 지난해에는 4%를 넘긴 것입니다. 또 통계청의 ‘2024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고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응답은 37.2%로 2012년 22.4%에서 계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인식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비혼 출산…제도 지원 필수
비혼 출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앞서 살펴봤듯 전통적 가족관에 따른 것이지만, 한국적 현실을 둘러보면 마냥 독려 또는 장려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부부가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것에 비하면 한부모가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게 우리 사회 시스템상 너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니까요. 사실 육아는 인식보다 실존의 영역입니다. 실제로 비혼 출산율이 높은 프랑스는 비혼 동거 커플이나 싱글 여성이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제도가 잘 조성된 국가로 꼽힙니다. 결국 정책이 뒷받침해야 하는 것인데요.
-정부와 국회, 제도 개선 나서 :이와 관련해 지난주 대통령실은 “한부모 가족이나, 어떤 여러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 한 명 한 명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보호하겠다는 일관된 정부 철학이 있다.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혹시라도 빠진 부분이 있으면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정치권도 비혼 출산과 비혼 출산 가정을 지원하는 법안 마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경원 의원이 준비 중인 '등록동거혼제'는 남녀 동거를 계약 관계로 묶어 세제혜택 등을 제공하고 이별 시엔 계약을 종료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박홍근 의원이 준비 중인 '연대관계등록제'는 연대관계인을 지정해 한부모가정과 1인가구의 수술 장례 등을 가족 대신 동의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용혜인 의원은 '생활동반자 관계로 등록하면 동거 및 부양의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주는 '생활동반자법'을 준비 중입니다. 배우 정우성씨에 대한 개별적 평가와는 별개로, 다양한 가족 형태를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로 삼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인 듯합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