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성니코틴 전자담배에 대한 규제공백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합성니코틴은 천연니코틴과 달리 담배로 정의되지 않는데요. 이 때문에 '담뱃세'를 내지 않고 자유롭게 판매 가능합니다. 이런 규제공백을 노리고 해외기업이 국내에 신제품을 출시했습니다. 국회에선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유해성 여부를 검증하지 못해 시간을 끌었습니다. 최근 정부의 유해성 연구가 완료됐고, 현재 논의가 진행 중입니다. 토마토Pick에서 합성니코틴 규제공백을 둘러싼 논란을 살펴봤습니다.
한국 노리고 신제품 출시
최근 글로벌 담배회사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BAT) 그룹이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 '노마드 싱크 5000'을 출시했습니다. BAT는 영국에 본사를 둔 유럽 최대의 담배 회사입니다. 대표적인 브랜드는 '던힐'과 궐련형 전자담배 브랜드인 '글로'가 있습니다. BAT그룹의 한국 계열사인 BAT로스만스가 이 신제품을 한국 시장에 출시했는데요. BAT는 이 제품을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한국에 내놓았습니다. 한국은 합성니코틴 담배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내 규정은 담뱃잎을 사용해 만든 천연니코틴만 담배 제품으로 인정합니다. 따라서 합성니코틴으로 전자담배를 만들면 규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담뱃세를 내지 않아도 되고, 판매와 유통이 자유롭습니다.
BAT, 규제공백 노렸나?
BAT도 이번 제품 출시가 국내 규제공백을 염두에 뒀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BAT로스만스는 "합성니코틴 액상 담배와 천연니코틴 액상 담배에 서로 다른 법을 적용하는 국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면서 출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담뱃세가 부과되지 않으니 연초나 궐련형 전자담배보다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습니다. 할인행사와 '1+1' 같은 판매촉진 행사도 가능합니다. 온라인 판매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판기 판매도 가능합니다.
-청소년들, 액상형에 노출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청소년이 구매할 가능성도 무시 못 합니다. 실제로 청소년기 흡연경험이 액상형 전자담배로 시작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19~2023년 청소년 흡연자 10명 중 3명(32%)은 액상형 전자담배로 흡연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질병관리청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소년기 액상형 전자담배로 처음 흡연을 시작한 학생의 60% 이상이 일반담배로 전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담뱃세 형평성 문제도
규제공백은 담뱃세 형평성 문제까지 일으키고 있습니다. 담뱃세는 담배에 부과되는 담배소비세와 개별소비세, 국민건강부담금 등을 합한 금액으로, 담뱃값의 상당 비율을 차지합니다. 소비자 판매가 4500원인 궐련형 담배 1갑 기준 담뱃세는 3323원(부가가치세 제외)입니다. 천연니코틴을 사용한 액상 전자담배는 1㎖ 당 약 1800원의 담뱃세가 부과됩니다. 담배소비세는 지방자치단체를 지원하는 데 쓰입니다. 연간 담뱃세는 10조원에 달하는 세수를 책임집니다. 하지만 최근 전자담배 사용 비율이 늘어나면서 담뱃세 세수가 줄어드는데요. 이에 합성니코틴에 대한 과세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적극 규제 나서지 않은 이유
정치권이 그동안 적극적으로 규제에 나서지 못한 데에는 합성니코틴 전자담배 생산자가 중소기업이었던 탓도 있습니다. 합성니코틴 전자담배를 유통하는 이들도 자영업자들이었습니다. BAT와 같은 대기업은 시장을 관망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대기업이 시장에 진출하면서 관련 규제가 이뤄질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앞서 2016년 미국 담배회사 필립모리스가 궐련형 전자담배인 '아이코스'를 판매하자 곧바로 관련 규제가 이뤄진 바 있습니다. 물론 궐련형 전자담배가 큰 틀에서 담배 제품에 속했기 때문에 규제 자체가 쉬웠던 측면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논의한 국회
합성니코틴을 규제하기 위한 담배사업법 개정안은 20대와 21대 국회에서도 제출된 바 있습니다. 다만 매번 정부가 신중한 입장을 보여 통과되지 못했는데요. 22대 국회에서도 이미 5건의 법안이 발의돼 있습니다. 이들 법안은 담배의 정의를 확대해 기존의 '연초'와 함께 '니코틴'으로 범위를 넓이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미 미국, 캐나다와 유럽 주요 국가에서는 합성니코틴 담배를 궐련형 담배와 유사하게 규제하고 있습니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합성니코틴의 규제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습니다. 법안은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 중입니다.
-정부, 뒤늦게 규제 '시동' :그간 정부는 합성니코틴의 유해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못한 점에 따라 법안 통과를 미뤄왔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최근 합성니코틴의 유해성을 검증했고, 최근 합성니코틴의 유해성을 최종 확인했습니다. 박성훈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합성니코틴 원액에 유해물질(발암성·생식독성 등)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선행 연구에서도 유해성분이 검출됐지만, 니코틴 원액 때문인지 용매제 때문인지 확인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이번 연구로 니코틴 원액의 유해성이 밝혀진 겁니다. 최종 연구용역 결과에 따라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정부도 합성니코틴 규제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시민-업계, 규제 한목소리
합성니코틴을 규제하라는 시민단체들의 요구도 이어졌습니다. 청소년지킴실천연대와 한국담배규제교육연구센터, 서울 YMCA 등 세 개 단체는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합성니코틴 규제 법제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들은 국회에 계류된 법안의 신속한 통과를 요구했습니다. 전자담배 업계도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전자담배 제조·수입·유통사와 소매점 등으로 구성된 전자담배협회 총연합회는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내고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투명한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며 "규제 사각지대 해소, 유통 질서 확립, 담배유형별 과세 체계 정립을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조차 합성니코틴이 청소년에게 판매되는 무질서한 시장은 원치 않다는 겁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