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이달 정부가 내놓은 677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합니다. 내년 예산안에서도 정부는 긴축재정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지난해 56조원대 세수 결손이 발생한 데 이어 올해도 세수 부족 규모는 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정부는 ‘약자복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예산은 줄였습니다. 긴축재정으로 인해 재량 지출이 감소한 탓입니다. 이번 토마토Pick에서는 보육부터 노인복지 분야까지 연령대별 보건복지 예산 규모와 문제점을 살폈습니다.
선별 복지…약자 배제 우려
윤석열 정부의 내년도 복지 예산안은 건전재정과 긴축재정 기조로 인해 민생안정, 복지강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약자복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약자를 선별하겠다는 것인데요. 약자에 포함되지 못한 다수를 배제할 것이란 우려가 큽니다.
참여연대의 ‘2025년도 보건복지 분야 예산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편성한 내년도 보건복지 분야 총지출은 125조7천억원입니다. 전년 대비 7.4% 증가한 수치입니다. 2023년과 2024년에 전년 대비 증가율이 각각 12.2%, 11.8%였던 점을 고려하면 큰 폭의 증가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두텁고 촘촘한 복지를 공언했지만, 정작 내년 예산안을 뜯어보면 보건복지 분야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인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이 확인됩니다.
어린이집 확충 예산 삭감
2025년 보육 예산은 2.38% 감소했고, 보육 사업들이 교육부로 이관되면서 예산 구조도 변화됐습니다. 어린이집 확충 예산은 약 35.8% 감소한 268억원, 유아교육비 보육료 지원 예산은 약 3.4% 감소한 3조1020억원입니다. 가정양육사업 지원사업이 약 28.5% 감소한 773억원 등으로 전체 예산이 줄어든 겁니다.
특히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을 위한 예산은 매년 삭감돼 보육 공공성 확대에 관한 정부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유아교육비 보육료 지원사업 역시 한시적인 유아교육지원 특별회계에 의존하고 있어 재정적인 지속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영유아 보육료 지원사업과 시간제보육 지원사업, 어린이집 교사 양성 지원사업, 가정양육 지원사업 등 대부분의 보육 관련 사업들이 국고보조사업 형태로 지방정부의 과도한 재정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꼽힙니다. 균등한 교육과 돌봄 여건을 제공하려면 지방정부보다 중앙정부를 통한 재원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저출생 관련 예산도 부족
보건복지부 소관 아동·청소년 분야 예산도 2조7천억원이 편성돼 전년 대비 3.7% 줄었습니다. 아동·청소년 예산은 2023년 1.5%, 2024년 0.6% 줄면서 3년 연속 감소 추세입니다. 저출생이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하면서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에 예산을 쓰는 데는 여전히 소극적인 셈입니다. 아동·청소년 예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아동수당도 7.2% 감소했습니다. 출생아 수의 자연 감소가 원인인 것으로 판단되지만, 지급대상 연령의 상향과 지급액의 단계적 인상이 필요한 상황에서 적극적인 예산 확보가 이뤄지지 않은 겁니다.
-아동복지시설 예산도 축소 :초등돌봄 예산의 경우 지역아동센터의 열악한 환경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지만, 전년에 이어 환경개선비는 반영되지 않았습니다.보호아동 그룹홈 운영지원 사업 예산은 전년보다 10.3% 감소됐습니다. 정부는 학대피해아동쉼터와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지만, 정작 신규 설치비를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마을돌봄 수요가 크고 공급이 적은 만큼 이와 관련한 예산 편성도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처우개선 예산이 이번에도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시민단체들은 최소한 복지부의 사회복지시설 인건비 가이드라인에 맞춰 예산이 증액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기초연금에 '갇힌' 노인복지
내년도 사회복지 예산에서 24.5%를 차지하는 노인복지 예산은 전년보다 7.2% 증가한 27조5천억원입니다. 하지만 이는 주로 노인인구 증가에 따른 순증가분이고, 재량적인 예산 증가는 매우 제한적이라는 평가입니다. 노인복지 예산은 특히 기초연금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구조여서, 2025년에도 기초연금 예산이 노인복지 총예산의 80%를 차지합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운영지원 예산은 전년 대비 1.0% 늘어난 2조5230억원 수준입니다. 돌봄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어 적정 서비스 제공과 장기요양보험 보장성 확대를 위해서는 운영지원금 증액이 필수인데, 증가폭은 미미합니다. 또한 노인맞춤 돌봄서비스는 제도 통합으로 사업이 신설된 2020년 이후 처음으로 예산이 삭감되기도 했습니다.
노인복지 예산의 규모는 기초연금으로 인해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노인복지 전반의 부담을 지자체와 종사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우려가 큽니다. 기초연금의 방향 설정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의 국고지원 확대, 국고보조사업 기준보조율 제고 등의 제도개선이 시급합니다.
보건의료 예산 증가에도
공공성 강화 예산은 감소
내년도 전체 보건의료 예산은 18조4천억원 규모로 책정됐습니다. 전년 대비 5.4% 늘었지만, 건강보험 예산이 72.3%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실질적인 보건의료 예산은 18.7%에 불과합니다. 이 예산도 전년보다 5.4% 늘었지만, 2024년 대규모 삭감을 일부 회복한 것일 뿐 실질적인 증가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고지원금은 법적으로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의 14%로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내년 국고지원 예산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의료비 지원사업과 지역거점병원 확충 등 국가 책임과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다수 예산이 감소했습니다.
특히 공공의료 관련 지역거점병원 공공성 강화 사업 예산은 60% 감축된 반면 지역거점병원 혁신 지원에는 2조3696억원이 배정됐습니다. 이는 1차의료나 기초지자체의 의료서비스를 혁신하는 비용이 아니라 지방 대형병원을 내실화하는 비용입니다. 정부의 공공의료 정책 방향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