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즐겨요 피자헛’이란 슬로건과 빨간지붕의 로고를 가진 피자헛은 1980년대 우리나라에 ‘피자’란 음식을 처음 선보인 회사입니다. 경제적으로 막 성장을 시작하던 1985년, 이태원동에서 1호점을 시작했는데요. 그 당시에는 피자 브랜드의 독보적인 자리와 고급 음식점이란 이미지까지 차지하면서 승승장구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최근 피자헛이 유례없는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는데요. 가맹점주들이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에서 패소해 200억원이 넘는 배상금을 떠안게 된 후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기 때문입니다. 유동성 위기는 급한 대로 막았으나, 과거의 명성을 되찾는 것은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는데요. 이번 토마토 Pick에서는 ‘피자헛’의 흥망성쇠와 우리 외식산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현지화 통한 고급화 전략
1984년 동신식품이 펩시코 인터내셔널로부터 한국 지역 라이센스를 얻어 1년 뒤에 서울 이태원동에 피자헛 1호점을 개설했습니다. 피자란 낯선 음식을 대중에게 쉽게 알리기 위해 ‘불고기 피자’ 등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개발하면서 서서히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대중에 처음 선보인 광고에는 미국에서 온 음식이란 이미지를 한 껏 부여했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매장도 고급 음식점 이미지를 내기 위해 넓은 면적을 갖춘 장소와 벽돌 장식으로 된 내부 등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피자헛’은 국내에 제대로 된 피자 전문점이 없던 시기인 2000년대 초반까지 대호황을 누렸습니다. 이태원 1호점을 시작으로 52개까지 지점을 늘리기도 했는데요. 피자헛은 매장에서 먹는 프리미엄 피자란 인식이 널리 알려지면서 친구들의 생일이나 연말 파티 등 큰 행사가 있을 때 많은 이들이 찾기도 했습니다.
피자헛이 성공적으로 한국에 자리를 잡자, 미국에서 피자헛을 운영하던 모회사 펩시코 인터네셔널은 동신식품과 돌연 프랜차이즈 계약을 해지하고 직영을 통보했습니다. 기획안 한 장으로 본사를 설득해 계약권을 따냈던 기업인 성신제는 미국 본사와 소송 전을 벌였으나, 결과적으로 320억원에 국내 경영권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빅3 등장과 저가피자
-경쟁업체의 등장 :미국이 직영을 통보한 후 아이러니하게도 피자헛의 흥행 가도는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피자헛을 필두로 경쟁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기 때문인데요. 대표적으로 1990년대 토종브랜드 ‘미스터피자’가 이화여대 앞에 1호점으로 출사표를 던졌고, 같은 해 ‘도미노피자’도 국내에 진출했습니다. 그러면서 피자업계는 빅3로 경쟁을 이어갑니다. 이때 피자 브랜드의 맏형인 피자헛은 ‘피자는 뜨거워야 맛있다’며 ‘배달된 피자가 뜨겁지 않으면 공짜’란 화끈한 마케팅까지 펼쳤는데요. 하지만 시대와 대중들의 입맛이 바뀌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저가 브랜드와 차별화 전략 :그러다 2000년대 초 ‘피자에땅’, ‘피자스쿨’, ‘피자마루’ 등의 저가 피자들이 등장했습니다. 이에 대형 프랜차이즈였던 피자헛과 도미노피자, 미스터피자 등 국내 빅3 업체는 매장을 특성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며 대형 마트나 중소형 피자 업체의 저가 마케팅과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을 펼쳤습니다. 2011년 피자헛이 전국 300여개 매장에 샐러드바를 갖추고, ‘피자헛 레스토랑 샐러드 키친’이란 로고를 새로 달았습니다.
곤두박질 치는 실적
피자헛은 2008년 말 공시기준 매출 4000억원을 넘기는 압도적 1위에서 2014년 매출액이 1000억원대까지 무너졌는데요. 영업이익 역시 2013년부터 적자로 전환됐습니다. 여기에 한국피자헛은 2007년부터 월 매출의 0.55%, 2012년 4월부터 월 매출의 0.8%에 달하는 돈을 ‘어드민 피(Administration Fee)’ 명목으로 매달 징수해 갔고, 이를 문제 삼은 점주들과 소송 전까지 휘말렸습니다. 이 문제로 대대적 구조조정까지 진행되면서 노조와 갈등이 표면화되자 ‘매각설’까지 돌면서 바람 잘날 없는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2017년 미국 Yum! 브랜드가 보유한 한국 피자헛 지분 100%가 오차드원에 매각됐습니다. 이때 피자헛 매출은 208억원, 영업이익은 -12억원을 기록했습니다.
한국피자헛, 회생 가능할까
한국피자헛은 재기를 위해 1+1, 점심시간 한정 9900원 등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했지만,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무리한 프로모션은 본사의 갑질로 가맹점주들의 피해로 이어졌는데요. 2018년쯤엔 동의 없이 원재료와 부재료 등의 가격에 차액을 붙여 납품하는 등 ‘차액가맹금’을 받아 점주들을 분노케 했습니다.
결국 소송으로 번졌는데요. 지난 9월 서울고등법원은 한국피자헛 가맹점주 94명이 본사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 2심에서 “한국피자헛이 2016~2022년 가맹점주에게 받은 차액 가맹금 210억원을 반환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한국피자헛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같은 달 23일 상고장을 제출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피자헛은 2개월 만에 회생절차 신청과 동시에 자율 구조조정 프로그램(ARS)을 신청했습니다. 한국피자헛은 최근 2022년 -2억5612만원, 2023년 -45억2240만원 등으로 적자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210억원의 반환금을 돌려주는 것은 무리란 판단때문이란 분석이 나왔습니다.
이날 한국피자헛은 회생절차 신청과 관계없이 전국 피자헛 매장은 정상영업 중이라며 가맹점주와 소비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요. 그러나 전문가들은 피자헛의 재기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내놨습니다.
이진하 기자 jh3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