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본 적이 없는 '시끄러운 한국은행'이 질주 중입니다. 한은의 보고서와 이창용 한은 총재의 발언이 매번 논란을 일으킵니다. 흥미롭게도 '시끄러움'은 바로 이 총재가 의도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그가 원했던 한은의 역할은 한국사회가 가진 문제에 해법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한은이 이렇게 사회에 던진 해법은 해결책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토론을 유도하고 있는데요. 덕분에 많은 논의를 거치며 의견이 교류되고 있습니다. 토마토Pick이 '시끄러운 한은'과 그에 대한 평가를 살펴봤습니다.
"지방 학생 80% 뽑자"
이창용 총재는 "대학이 학생 80%를 지방에서 선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최근 가장 주목받은 발언 중 하나입니다. 지난 8월 한은이 발간한 보고서에 처음 이런 내용이 담겼습니다. 보고서는 입학 정원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로 뽑는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서울대 등 상위대학이 자발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 총재는 이 주장을 1회성으로 하는 게 아니라, 꾸준히 제기하며 논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서강대 강연에서도 이 총재는 이 문제를 또 언급했습니다. 그는 "(내 주장이) '강남권, 서울에 대한 역차별이다' '현실성이 없다'는 얘기가 많은데 생각의 발상이 바뀌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전 세계를 돌다 보니 어느 대학도 성적순으로만 뽑는 나라가 없다"며 "교수님들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싱크탱크' 역할 강화 중
한은의 이런 제안은 여러모로 이례적이고 파격적입니다. 이런 파격적 보고서는 이 총재가 취임한 후 자리가 잡혀가는 중인데요. 이 총재는 한은의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지속해서 사회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만 국민들로서는 '대학 입시'와 한국은행의 정책 제안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문이 생길 만 합니다.
-입시, 저출산, 수도권 집중 :다시 이 총재의 대학 강연으로 돌아가 발언을 듣겠습니다. 그는 "국민 생활의 기본적인 것에 어떻게 적당한 가격을 주느냐가 중요하다"면서 "그런 면에서 집값 잡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통화정책 할 때도 고려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기관장이지만, 부동산 문제도 고려하고 있다는 발언입니다. 또 이 총재는 "저출산 연구를 많이 하는데 큰 원인 중 하나가 수도권 집중이다. 수도권 집중의 폐해와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연구를 하는 것은 (한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밝혔습니다. 이후 제안한 게 지역별 비례 선발제입니다. 저출산 문제의 원인은 수도권 부동산이고, 그 해법은 지역별 비례 선발제란 시각입니다. 모두 연결되어 있는 주제인 셈입니다.
'시끄러운 한은'을 화두로
이 총재는 취임 당시 '한은사'를 언급할 정도로 조용한 한은을 문제 삼았습니다. '한은사'는 절간처럼 한은이 조용하다는 뜻입니다. 그는 한은이 가진 많은 데이터를 활용해 시끄럽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봤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그의 목표는 성공입니다. 여기저기서 한은이 내놓은 보고서와 이 총재의 발언을 두고 토론이 벌어집니다. 지역별 비례 선발제도 관련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국회의원들은 그를 상대로 한은 보고서와 그의 발언에 대해 묻습니다. '시끄러운 한은'이 정치권에도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겁니다.
월권 논란에 휘말리기도
사실 논쟁을 만드는 사람은 환영받기 어렵습니다. 이 총재도 마찬가지인데요.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 총재를 향해선 불편한 질문도 나왔습니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그에게 선거 출마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는데요. 이 총재의 여러 정책 제안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입니다. 이 총재는 "(출마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답했습니다.
-정부도 곱지 않은 시각 :정부 내에서도 눈총을 받고 있습니다. '월권' 얘기가 나올 만큼 한은의 행보가 파격적이기 때문인데요. 한은은 물가와 관련한 보고서에서 농산물을 고물가의 원인으로 지적했습니다. 한은은 농산물 물가 상승을 두고 영세한 영농 규모로 인한 낮은 생산성과 높은 유통 비용을 꼽았습니다. 이에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한은은 농업 분야 전문가들이 아니기 때문에 복잡한 농업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공개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고용노동부와 의견이 갈리기도 했습니다. 한은이 보고서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차등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위반이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당시 "외국인 근로자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헌법(평등권), 국제기준(ILO), 국내법(근로기준법, 외국인고용법) 등과 배치된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래도 할 말은 한다
이 총재는 본업인 경제 분야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숨김 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최근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재정 정책을 제때 사용하지 않아 경기 침체가 지속된다"는 지적을 했는데요. 이에 이 총재는 "(국내) 경기가 침체에 있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분기 수치를 고려하더라도 잠재 성장률보다 높은 수준"이라며 "전면적 경기 부양은 필요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최근 한은에서 열린 정책심포지엄에선 한국의 부동산 쏠림현상을 지적했습니다. 이 총재는 "우리나라의 가계와 기업 등 민간부채는 작년 말 기준 GDP의 2배가 넘어 주요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라며 "특히 부채가 부동산 부문에 과도하게 집중된 것은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부동산 부문으로의 지나친 자금 쏠림은 금융 위기를 초래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