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지난해 7월 성평등과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10월29일을 ‘국제 돌봄 및 지원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돌봄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자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오히려 공적 돌봄의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돌봄노동자 최저임금 차등적용과 공적 돌봄기관 해산,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등에서 여러 부정적인 이슈도 불거졌습니다. 토마토Pick에서 국내 돌봄체계의 현황과 관련 문제점 등을 살펴봤습니다.
국민 모두 누려야 할 '돌봄'
전세계적으로 고령화와 핵가족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돌봄서비스 수요는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일하는 돌봄노동자는 약 15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지만, 20년 뒤에는 추가적으로 150만명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돌봄체계를 만들기 위해 돌봄노동의 가치 인정과 돌봄노동자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유엔 산하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6월 총회에서 ‘양질의 일자리와 돌봄경제’에 대해 토론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ILO는 이 자리에서 “모든 회원국은 돌봄과 고용, 성평등 증진에 기여하는 양질의 돌봄 일자리를 제공하고, 일터에서의 기본원칙을 존중하고 실현할 의무가 있다”고 결의했습니다. 이에 유엔은 10월29일을 ‘국제돌봄의날’로 지정하면서 공공돌봄 강화와 돌봄노동자 권리 보장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제 ‘돌봄 받을 권리’도 국민 누구나 누려야 하는 기본권이란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열악한 돌봄노동자 처우
가사돌봄 현장에서는 요양보호사와 가사서비스 노동자, 간병인, 장애인활동지원사, 노인생활지원사, 아이돌봄이 등 많은 노동자가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저임금에 열악한 근로조건에 처해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이들이 제공하는 필수적인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낮습니다. 민주노총의 2022년 ‘돌봄노동자의 노동권 실태와 법제도 개선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돌봄노동자 1200여명 가운데 91.7%가 계약직으로 일했습니다. 이들은 낮은 임금(74.4%), 고용 불안(61.2%), 사회적 저평가(26.7%)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사회복지시설의 민간 운영 비율은 거의 90%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저임금=돌봄 최고임금"
한국은행은 올해 초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돌봄서비스직 노동공급 부족 규모를 2022년 19만명→2032년 38~71만명→2042년 61~155만명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인력난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민간 중심의 비용 축소 방안을 제시해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한국은행은 △개별 가구가 이주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최저임금을 피하는 방식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대상 업종에 돌봄서비스업을 포함하고, 동 업종에 대한 최저임금을 낮게 설정하는 방식 등을 제시했는데, 시민사회단체들은 돌봄의 공공성 확보에 역행하는 발상이라고 반발했습니다. 최혜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은 “현재도 요양보호사 임금은 노인장기요양 수가에 반영된 인건비에도 못미친다”며 “OECD 회원국 돌봄노동자 평균 임금이 최저임금의 150%인 반면, 한국에서는 최저임금이 곧 돌봄노동자의 최고임금인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공공 중심 방향 전환해야
전문가들은 민간에서 이뤄지는 돌봄노동이 저임금과 고용 불안 문제뿐 아니라 양질의 돌봄서비스를 지속가능하지 못하도록 만든다고 지적합니다. 국가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이제 돌봄을 상품이 아닌 권리로 보장해야 하고, 이를 위해 민영화된 돌봄체계를 공공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참여연대는 “한국 사회가 저출생 고령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누군가를 돌보고 부양해야 하는 일이 가정 내에서만 이뤄질 수 없게 됐다”며 “가족 중심으로 구획된 사회복지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에 이미 노인돌봄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지적하며 "민간 장기 요양기관 주도의 노인돌봄체계는 장기요양서비스의 질적 저하과 돌봄 공백 등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국가 주도의 공적 노인돌봄체계로 전환이 시급하다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민간기관은 국가 재정에 의존하면서도 이윤 추구를 위해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돌봄에 대한 인식개선 시급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돌봄노동의 가치가 존중돼야 하고, 돌봄노동자들에 대한 인식개선도 선행돼야 할 과제로 꼽힙니다. 돌봄노동자들이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형태에 처해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돌봄노동자 대부분이 여성이고, 이들의 돌봄노동이 '가치가 그리 높지 않은 일'이라고 저평가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스웨덴이나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은 ‘돌봄 임금 프리미엄’을 통해 저평가된 돌봄노동의 가치를 제고하고 있습니다. 전지현 전국돌봄서비스노조 위원장은 “특히 코로나 유행 시기를 지나면서 많은 국가가 돌봄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돌봄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나섰다”며 “최근 국내에서 돌봄노동자의 임금기준을 최저임금보다 낮게 책정해야하다는 주장이 나올 때마다 정부나 지자체조차 돌봄노동을 인정해주지 않는 모습에 허탈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