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더위를 뚫고 가을로 달려왔던 2024시즌 프로야구가 '기아 타이거즈'의 통합우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프로야구 개막 후 최다 우승을 이끌어 냈던 기아가 7년 만에 다시 챔피언에 오르게 된 것인데요. 올해 프로야구는 야구계는 물론 팬들에게도 풍성한 기록과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으로 특별한 시즌으로 기억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야말로 프로야구가 새로운 황금기를 맞았다는 기대도 커지고 있습니다. 토마토Pick이 10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던 2024년 프로야구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지속가능성 등을 두루 짚어봤습니다.
1000만 흥행, 원인과 전망
올해 프로야구는 마침내 꿈의 숫자에 도달하며 의미 있는 순간을 맞았습니다.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첫 10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는데요.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올 시즌 정규리그 최종 관중은 총 1088만7705명을 기록했습니다. 기록적인 더위도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열기를 꺾지 못한 것이죠. 정규리그 일정의 80%정도가 진행됐을 때 종전 최다 기록이었던 840만688명(2017년)을 돌파했는데요. 지난해 기록인 810만326명도 훌쩍 넘겼습니다. 정규리그를 마친 뒤에 이어진 가을 무대에서는 전 경기인 16경기 연속 매진 행진을 기록하면서 누적 관중 35만3550명을 동원해 흥행 가도를 이어갔습니다.
-아이템·쇼츠, MZ 사로잡다 :역대급 야구 흥행에는 MZ세대를 사로잡은 마케팅도 한 몫했는데요. 그동안 지역적 색이 짙었던 프로야구가 2030 사이에서 '새로운 놀이터'로 자리잡으면서 젊은층의 유입이 많아졌습니다. 사실 개막 전에는 국산 OTT '티빙'에서 중계권을 따내 유료중계를 하는 것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가 작지 않았는데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유료중계가 신의 한 수가 됐습니다. 경기 전체를 모바일로 보는 건 유료였지만, 대신 짧은 경기 영상에 대해서는 2차 가공이 허용돼 젊은 세대들이 야구를 짧은 영상으로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른바 '쇼츠'의 힘은 위력적이었습니다.
야구 구단을 대표하는 마스코트 이모티콘부터 인형, 패션 소품까지 차별화된 상품도 MZ 세대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 따르면 4월부터 한국시리즈 5차전 전날인 이달 27일까지 유니폼 카테고리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64% 늘었습니다. 또 다른 온라인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에 따르면 지난달 1~27일 '야구장 룩' '야구 키링'의 검색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7600%, 2119% 폭증했다고 합니다.
-역대급 관중에 실적은? :역대급 흥행에 프로야구를 이끄는 기업들도 실적이 올랐을까요? KBO 10개 구단의 재무제표를 살펴보면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란 말이 무색해집니다. 지난해 10개 구단의 총매출은 6150억원으로 평균 615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중소기업 수준에 그치는 수준인데요. 이중 기아 타이거즈, LG 트윈스, KT 위즈, 한화 이글스 등 4곳에서는 영업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가 각각 3억3천만원, 5억6천만원의 미미한 영업이익을 기록했습니다. 올해엔 역대급 흥행으로 실적이 좀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국내 야구단은 모그룹의 이미지 홍보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탓에 경영 실적에는 크게 일희일비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참고로,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경우 지난해 뉴욕 양키스의 매출은 6억7900만달러(약9300억원)로 KBO 전체 매출보다 많았습니다. 210만달러(약 28억원)의 영업이익도 냈습니다. MLB 30개 구단의 매출 합계는 100억달러가 넘습니다. 인구나 시장규모가 국내 리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죠.
-흥행 지속될까? 무엇이 필요할까? :올해 기록한 역대급 흥행이 계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립니다. 한번 유입된 팬들이 쉽게 빠져나가지는 않겠지만, 황금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KBO와 각 구단, 선수들의 끊임 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안주하는 순간 팬들이 떠나는 건 순식간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선수들의 기량이 핵심입니다. 좋은 선수는 프로스포츠 존립의 기본 중 기본입니다. 스타성을 가진 선수들이 많아야 하겠죠. 그리고 매년 새롭게 주목받을 수 있는 신예 선수들이 꾸준히 등장해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게 리그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각 구단의 선수 발굴과 관리가 좀 더 정교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와 함께 각 구단별 팬서비스 및 경기장 환경 개선 등도 흥행을 좌우하는 주요 요소입니다. 현재도 각 구단들은 키즈존, 가족석, VIP 라운지 등의 시설 확충과 경기 당일 이벤트 등을 통해 팬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 외에 관람 접근성과 편의성 개선, 모바일 티켓 시스템 개편 등 보다 나은 팬서비스에 대한 지속적 관심도 필요해 보입니다. 한번 발을 디딘 충성팬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구단의 역사도 쌓이는 중
"광주, 우리 시대에 가장 큰 아픔을 야구로 극복한 도시에서 타이거즈는 운명이자 자랑이었습니다. 그런 기아 타이거즈가 7년 만에 챔피언에 오릅니다." 한명재 캐스터가 타이거즈 우승 순간에 전한 이 말이 화제가 됐습니다. 해태 시절까지 포함해 한국시리즈 12회 우승의 위업을 달성한 타이거즈에 진지한 역사성을 부여하는 멘트였습니다. 수도권 강세를 이겨내고, 리그 명문팀인 타이거즈와 라이온즈가 31년 만에 광주-대구에서 맞대결을 벌인 것도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젠 경기에서 영호남 갈등 요소는 찾아볼 수 없는데, 이 역시 야구와 구단이 만들어온 역사입니다. 새로 유입된 젊은층도 중요하지만, 오랜 올드팬들에게도 각 구단이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 역사는 놓칠 수 없는 관심사입니다. 각 구단이 이런 전통과 역사도 잘 가꾸어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진하 기자 jh3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