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말, 환경부가 신규 댐 임시 후보지 14곳을 발표했습니다. 환경부는 댐 건설 목적이 극한 호우, 가뭄 등에 대비한 물그릇 확보 차원이라고 했는데요. 그러나 발표 직후 댐 신설 및 증설이 이름처럼 기후위기 대응에 적합한지, 후보지 선정 과정이 투명한지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최근에는 선정 과정에서 공식 회의도 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왔는데요. 환경단체를 비롯해 일부 지역 주민들이 댐 건설을 반대하고 있어 논란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일각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은 핑계이고, 제2의 4대강 사업을 하려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토마토 pick이 신규 댐 건설을 둘러싼 논란을 살펴봤습니다.
'기후대응댐' 14곳 예고
윤석열 정부가 지난 7월 30일 전국 14곳에 댐 건설을 추진하겠다며 밝힌 건설 목적은 홍수와 가뭄 예방이었습니다. 당시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기후위기로 인한 극한 홍수와 가뭄으로부터 국민 생명을 지키고, 전략산업의 미래 용수 수요 뒷받침을 위해 댐 건설을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 사업명칭도 '기후대응댐' 건설사업이었고, 8월부터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을 수립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이후 후보지를 찾아 지역 설명회와 공청회 등을 열어 주민들을 적극 설득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댐의 용도를 보면 다목적댐 3곳, 홍수조절댐 7곳, 용수전용댐 4곳입니다. 권역별로 보면 낙동강 권역이 6곳으로 가장 많았고, 한강권역 4곳, 영산강과 섬진강권역 3곳, 금강권역 1곳 등입니다.
환경부는 사업 추진 배경으로 지난 2022년 태풍 힌남노로 큰 피해를 본 경북 포항 냉천 사례를 들었습니다. 당시 냉천 상류에 '항사댐'이 건설됐다면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는데요. 지난 7월 전북 군산 집중호우 인명 피해와 2022년 남부지방 가뭄 피해도 '기후대응댐'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이 사업에 대해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댐 건설을 건의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제2의 4대강" 반발
예산 12조원 추산도
정부 발표 직후 환경단체를 비롯해 정치권에서도 거센 반발이 일었습니다. '제2의 4대강 사업'이라며 환경파괴는 물론 예산 낭비에 대한 우려도 나왔습니다. 당시 '보 철거를 위한 금강낙동강영산강 시민행동'은 보도자료를 내어 "이명박 정부가 4대강 16개 보를 만들 때도 홍수와 가뭄을 대비하겠다고 했지만 그후 어떤 것도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16개 보는 22조를 들인 흉물로 전락해 지금까지도 강물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야당도 반발했는데요. 강득구 민주당 의원은 "기후대응댐 건설비는 12조원으로 추산된다"며 "막대한 혈세낭비가 불가피하니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오는 2025년 준공 예정인 전체 저수용량 180만㎥의 원주천댐 전체 건설 예산이 688억원인데요. 14개 기후대응댐 저수용량은 총 3만1810만㎥로, 필요 예산 12조원은 원주천댐 기준으로 비용을 추산한 결과입니다.
-주민 반발에 공청회 무산도 :환경부는 댐 건설을 7월 말에 발표하고 8월부터 주민 공청회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순서가 틀렸다며 반발했습니다. 김명숙 지천댐 반대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은 "댐을 발표하기 전 주민 설명회를 듣는 게 행정의 절차"라며 "그런 순서를 무시해도 되나. 지금이 군사정권 시절인가. 낙하산으로 딱 찍어서 청양에 댐을 만들겠다고 발표해 놓고 이제 와서 주민 설명회를 하는 것인가"라고 거세게 항의했습니다. 이처럼 주민들의 극심한 반발에 일부 지역은 공청회마저 무산됐습니다.
환경부 "4대강 2탄 아니다"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지난 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14개 댐을 어디서 오더를 받아서 한 게 아니다. 만약 그런 증거가 나오면 사퇴하겠다. 공무원 생활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장관은 또 "환경부가 만약 4대강 사업 2탄으로 토목 세력을 위해 댐을 추진한다면 책임지고 사퇴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발표 전 공식회의조차 없었다 :그러나 국정감사 이후 환경부가 최초 후보지 14개를 추리는 과정에서 단 한 번의 공식 회의도 하지 않은 것이 언론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실무진 회의만 열고 댐 후보지를 정한 것인데요. 댐 건설을 발표하는 브리핑 전에 열린 댐 관련 공식 회의는 지난해 9월6일 한강홍수 통제소에서 열린 '기후변화 대비 댐 관련 전문가 간담회'가 전부였습니다. 또한 지난 22일 환경부는 7월에 발표했던 신규 댐 후보지 14곳을 수정 발표했는데요. 댐 건설 후보지 발표 후 주민 반발이 심했던 강원 양구군, 충북 단양군, 충남 청양군, 전남 화순군 등 4곳을 제외했습니다. 다만 백지화는 아니고, 임시 후보지로 남겨두고 주민을 설득해 나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소양강댐 사례 반복 안돼
소양강댐은 국내 최대의 다목적댐으로 수도권과 강원도 일대에 물과 전력을 공급하는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변 지역 주민들은 지난 50년 동안 약 10조원이 넘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댐이 지어질 당시인 1970년대 초반에는 환경적인 문제나 경제적 피해 규모 등을 추정할 형편이 되지 않았고, 주변 원주민들도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저항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댐 주변 원주민에 소홀한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합니다. 국민권익위가 소양강댐 주변 지원사업비 실태조사를 한 결과, 최근 2년간 춘천을 비롯해 7개 지자체에 지급된 댐 건설 피해 지원금 207억원 중 42억원이 부실하게 집행됐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새로운 댐 건설에 앞서 주변 주민들의 피해도 미리 잘 살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진하 기자 jh3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