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거지방'을 검색하면 나이, 성별, 지역 등으로 나뉜 무수한 채팅방이 나옵니다. 거지방 아래에 따라붙는 주요 단어는 절약, 소비 습관, 저축입니다. 사람들은 이른바 거지방에서 서로의 소비 습관을 점검하며 절약을 다짐하고 할인 정보를 공유합니다. 파인다이닝, 명품, 여행 등으로 대변됐던 '보복 소비' 트렌드가 불과 1~2년 사이 '짠물 소비'로 뒤바뀐 것입니다. 어느덧 '플렉스'의 시대가 지고 무소비·무지출이 소비의 미덕으로 자리매김한 모습들을 토마토Pick에서 살펴봤습니다.
'절약 소비' 유행 아닌 문화로
KPR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소가 소비 트렌드 변화를 빅데이터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무지출과 무소비에 대한 언급량은 지난 2022년 상반기 1만4819건에서 올해 상반기 2만7481건으로 8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부를 과시하는 플렉스와 한 번뿐인 인생을 즐기자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언급량은 같은 기간 8만93건에서 6만47건으로 12% 줄었습니다. 또 절약에 대한 110만건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비용과 가격, 할인 등이 상위권에 올랐는데요. 유행을 넘어 다양한 절약형 소비문화가 정착했다는 게 김은용 KPR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의 해석입니다.
물가 폭등, 쪼그라든 살림살이
플렉스 소비는 왜 갑자기 자취를 감췄을까요? 매섭게 오른 물가와 금리가 그 원인으로 꼽힙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통계청이 집계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상당히 가팔랐습니다. 2021년 2월 전년 동월 대비 1.4%를 기록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같은 해 4월 2.5%, 10월 3.2%에 이어 2022년 3월 4.2%, 5월 5.3%로 뛰었습니다. 2022년 7월에는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6.3%까지 상승했죠. 지난해에도 매월 2.4~5%의 물가 상승률을 보였습니다. 지난 3년간 고물가가 지속되다 보니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해도 체감이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자비용↑…소비여력 감소 :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 폭등에 따라 주거비 지출이 늘어난 것도 소비를 끌어내린 요인으로 꼽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몰렸고, 이는 폭발적인 집값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르니 대출을 최대한으로 받아 집값 급등 막차에 탄 수요자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코로나 엔데믹과 함께 찾아온 고금리를 감당하기 벅찼습니다. 주택 매입자뿐만 아니라 전세자금대출을 받은 전세 세입자도 높아진 이자비용에 허덕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소득에서 이자로 빠지는 금액이 증가하니 다른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소비 여력 감소를 불러오게 된 것이죠.
-"벌어도 남는 게 없다" :소득이 고물가·고금리 기조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살림살이는 팍팍해졌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전국 1인 이상 가구의 실질흑자액은 월평균 100만9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1만8000원) 감소했습니다. 흑자액은 소득에서 세금과 이자비용 등의 비소비지출과 의식주 비용의 소비지출을 뺀 금액을 말합니다. 실질흑자액은 2022년 3분기부터 8개 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이는 실정입니다. 이는 2006년 1인 가구를 포함한 가계동향이 공표된 뒤 역대 최장기간 감소입니다. 다시 말해 가계의 여윳돈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고물가와 늘어난 이자비용, 실질소득의 부진은 내수 침체를 불러온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마트·편의점, 가성비에 집중
소비자 지갑이 얇아지면서 저렴한 제품 또는 가성비 제품을 찾는 손길은 늘고 있는데요. 이 같은 소비 패턴 변화는 대형마트와 편의점의 마케팅에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대형마트의 경우 1000원대, 1만원대 상품을 선보이는 행사를 진행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자체 브랜드(PB) 상품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편의점 또한 10년 전 가격 수준의 다양한 PB상품을 출시하며 고물가 시대 손님 잡기에 나섰습니다. 불황은 명절 대목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지난달 추석을 앞두고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명절 시기에는 선물 수요 증가로 매출이 확 뛰는데, 올해는 예년보다 증가세가 크지 않다"면서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어렵다 보니 소비를 최소화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소비심리 개선은 언제?
현재 주요 지표에서는 소비심리 회복 낌새가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소비자심리지수는 7월 103.6에서 8월 100.8, 9월 100으로 2달 연속 하락했습니다. 해당 지수가 100보다 작으면 향후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더 많다는 의미입니다. 내수 회복 지연 우려가 이어지며 소비자심리지수도 기준선에 바짝 다가선 것으로 분석됩니다.
-생활물가 여전히 높아 :이렇다 보니 실생활과 밀접한 소매유통업의 경기 전망에도 먹구름이 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500개 소매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올 4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는 80으로 집계됐습니다. 기준선 100을 크게 하회하는 수치입니다. 온라인쇼핑을 제외한 편의점, 대형마트, 백화점, 슈퍼마켓 등의 오프라인 업태는 전분기 대비 전망치를 낮췄습니다. 필수 소비재를 포함한 생활물가가 여전히 높은 탓에 소비자들이 지갑을 쉽게 열지 않고 있는 탓입니다. 이들 업체는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소비심리 회복 지연을 꼽기도 했습니다. 소비심리 위축이 지속되면 기업은 생산과 투자를 줄이게 되고 경기 침체의 악순환으로 연결됩니다. 현재로선 뾰족한 내수 회복 돌파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당분간 짠물 소비 트렌드는 이어질 전망입니다.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