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게임 강국으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세계 게임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보다 낮게 평가받던 중국에 역전당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최근 중국 게임사가 만든 '검은 신화: 오공(오공)'은 출시 4일 만에 1000만 장이 팔렸습니다. 특히 이 게임은 한국이 잘 도전하지 않았던 비디오게임이란 점이 눈에 띕니다. 중국이 이렇게 다양한 도전을 하는 반면 한국은 돈 되는 게임만 집착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토마토Pick이 어떻게 한국과 중국의 게임산업 격차가 벌어지게 됐는지 진단했습니다.
비디오게임 '오공' 돌풍
오공은 지난 8월20일 출시된 비디오게임입니다. 오공은 컴퓨터(PC)와 플레이스테이션5(PS5)로 즐길 수 있는데요. 이런 게임은 이용자가 처음 구매할 때만 비용을 지불합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가 게임 흥행을 좌우합니다. 발매 전부터 사전예약이 이어진 오공은 첫날 총 450만장이 판매됐습니다. 비디오게임은 500만 장을 흥행 기준으로 보는데요. 출시와 동시에 흥행가도를 달린 셈입니다.
중국 인구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도 오공의 흥행기록은 상당합니다. 출시 4일 만에 1000만장, 2주 차에는 1800만장을 넘겼습니다. 발매 당시 오공의 PC 버전 동시 접속자 수는 222만명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게임유통 플랫폼 '스팀'의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PC뿐만 아니라 PS5의 판매 성적도 좋습니다. 이에 중국에선 PS5의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2배 증가했습니다.
한국, 모바일·RPG만 집중
중국에서 PS5 판매가 늘었다는 소식은 신선한 충격입니다. 이런 콘솔 게임기는 북미와 유럽이 주된 시장이며, 아시아에선 일본을 제외하면 큰 시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게임기 가격이 수십만원이고 프리미엄 버전은 백만원을 넘습니다. 게임기를 구매해서라도 즐길 만큼 오공이 재밌다는 의미로 봐야겠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왜 이런 게임을 만들지 않을까요.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은 콘솔 게임기의 주력 시장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 게임사는 덩치가 작은 시장에 맞춰 게임을 개발하기 꺼렸습니다. 결국, 기존과 같은 사업방식을 고집하며 온라인게임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국내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 이를 바탕으로 모바일게임이 활성화된 것이지요. 다만, 모바일게임 대부분이 역할수행게임(RPG)을 추구한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한국 게임사가 모바일과 온라인에 매몰된 사이 중국에선 비디오게임에 도전하며 세계시장에서 앞서 나가고 있는 형세입니다.
모바일도 중국에 역전 허용
한국은 주력 종목에서도 중국의 역전을 허용했습니다. 지난 2020년 중국 게임사가 출시한 '원신'이 결정타였습니다. 원신은 모바일게임이면서 RPG 장르입니다. 이는 한국 게임사들이 경쟁적으로 출시하는 분야입니다. 그럼에도 원신은 한국시장에서는 물론 세계에서 대흥행을 거뒀습니다. 모바일 시장조사업체인 센서타워에 따르면 원신은 전 세계 모바일 최단 기간 10억달러(당시 한화로 1조1554억원)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당시는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세계적으로 '반중정서'가 심해진 상황이었음에도 중국 게임이 높은 매출을 올린 것이라 상당한 성과로 평가됩니다.
"돈이 될까?"
원신은 전 세계 곳곳에서 막대한 규모의 마케팅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2022년 서울 세빛섬에서 대대적인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 행사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익명의 게임 관계자 발언이 화제가 됐습니다. NC소프트 직원으로 추정됐던 그는 "돈이 될까? 업계 사람이면 돈 버는 게임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 거 같은데"라고 말했는데요. 이 발언자가 NC소프트 직원이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시 NC소프트는 모바일게임 '트릭스터M'을 출시하고 악평을 받던 시기라 비교가 됐습니다. 이후 트릭스터M은 서비스를 종료하고, 원신은 흥행을 이어가면서 해당 글이 아직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원신은 '돈이 되는 게임'이 됐습니다. 한국은 모바일게임 시장에서도 중국에 패배한 굴욕을 겪었습니다. 일각에선 중국 게임이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라고 항변하지만, 마케팅의 방향도 원신이 앞섰다는 평가가 존재합니다. 한국 게임이 연예인을 앞세워 게임을 알리기 위한 홍보에 집중한 반면, 원신은 오프라인 행사와 콜라보(협업) 굿즈 판매 등 유저를 위한 홍보를 했기 때문인데요. 이를 두고 게임 유저들은 "중국 게임사가 유저 이해도가 더 높다"고 평가합니다.
양산형 게임-확률형 아이템만
원신의 성공이 이례적인 이유는 IP(지식재산권)에도 있습니다. 최근 게임은 IP가 성패를 가린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원신 이전에 모바일게임 최강자 '포켓몬GO'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포켓몬GO는 이미 유명한 포켓몬스터라는 IP를 활용했기 때문에 흥행했습니다. 그러나 원신은 새로운 IP를 갖고 만든 게임인데도 사람들은 게임 스토리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만큼 잘 만든 셈입니다.
유저들은 국내 업체들의 부진 배경엔 '양산형 게임'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한국 역시 활용할 수 있는 IP가 많지 않은데요. 그러다 보니 기존에 성공했던 게임을 베껴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게임이 흥행하지 않으면 쉽게 서비스를 종료하고, 다시 게임을 만드는데요. 이런 게임을 양산형게임이라 부릅니다. 유저들이 점차 한국 게임을 신뢰하지 않게 된 이유입니다.
확률형 아이템의 문제도 있습니다. 국내 게임사는 일정 확률로 아이템이 나오는 상품을 판매했는데요. 이 확률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겼고, 최근에 법이 마련됐습니다. 게임사가 확률을 조작한 사례도 드러나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어두운 터널'
최근 한국 게임산업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내 5대 게임사 중에 실적이 좋았던 기업은 넥슨과 크래프톤에 그쳤습니다. 게다가 두 기업 역시 국내 게임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이 문제입니다. 넥슨은 '메이플스토리'와 '던전앤파이터' 같은 오래 묵은 IP를 여전히 사용합니다. 이런 IP는 당장 돈은 되지만 혁신적인 게임을 만들지 못하는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돈 되는 게임만 고집하다가 수익도 놓치고 있는 게임사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NC소프트인데요. NC소프트는 업계 최고였던 과거가 무색할 정도로 쇠퇴했습니다. 유저들은 '리니지' IP에 집착하는 NC소프트의 태도가 문제라고 봅니다. 한국 게임사들이 과거의 영광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다시 혁신에 나설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