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6~7일 방한하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합니다. 12번째 마주하는 두 정상은 '셔틀외교(상대국을 오가는 정례 정상회담)' 복원 평가와 안보 등 전방위적 협력을 재확인하겠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국내 여론은 좋지 않습니다. 일본 사도광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대일 외교 논란과 새롭게 임명되는 국무위원들의 '친일 역사관'까지 도마 위에 오르며 국내에 반일 감정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역대 최저 지지율을 기록한 기시다 총리가 우리나라를 방문함으로써 자민당의 업적을 다시 상기시키고, 기시다 총리가 속한 자민당의 재집권을 위한 명분을 쌓으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토마토Pick이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의 12번째 정상회담을 정리했습니다.
퇴임 앞두고 방한…배경은?
대통령실은 지난 3일 기시다 총리가 퇴임을 앞두고 한일 셔틀 정상외교 차원 및 임기 중 유종의 미를 거두고, 양국 간 발전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방한을 적극 희망해 성사됐다고 밝혔습니다. 이번에 회담이 진행되면 12번째 만남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시다 총리의 퇴임 직전에 이뤄지는 '고별 회담'이란 점에서 기존 만남과 의미가 많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일찌감치 이달 27일에 있을 자민당 총재 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니까 총재 선거 뒤에는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그런 그가 왜 한국을 방문하는지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여러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는 그의 지난달 14일 기자회견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재임 3년간 주요 성과로 '한일관계 개선'을 꼽았습니다. 그동안 정치자금 스캔들과 최악의 지지율 등에 시달렸던 기시다 총리에겐 퇴임을 앞두고 자신의 치적을 재차 알리고 외교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오무라이스만 남은 굴욕적 만남
지난해 3월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를 만나기 위해 일본을 향했습니다. 당시에는 만남부터 먹는 음식까지 모든 게 양국 언론의 관심사였습니다. 뜨거운 관심 속에서 기시다 총리가 택한 만찬 메뉴는 1차로 '스키야키(전골요리)' 요리를 선택했고, 이어진 2차에선 12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원조포크커틀릿'과 '오므라이스'였습니다. 이때 기시다 총리는 "오므라이스를 좋아하는 윤 대통령의 희망을 반영했다"고 했는데요. 야당과 국내 일부 언론은 비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메뉴만 주목받았지, 정작 외교적 성과는 매우 굴욕적이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민주당 :"성과 부풀려도 얻는 건 오므라이스"라고 저격했는데요. 이는 당시 윤석열 정부가 일본 전범 기업의 참여 없이, 한국 정부가 세운 재단이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판결금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의 '제3자 변제안'을 강제동원 피해배상안으로 제기했기 때문인데요. 이를 두고 민주당은 물론 일부 시민단체에서도 윤 대통령이 일본의 반성과 사죄 없는 강제동원 해법을 내놓고, 굴욕적인 한일 회담을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입니다.
-시민·사회 :당시에 여러 단체에서 시국 선언이 이어졌습니다. 성균관대 졸업생들은 "강제징용 노동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제3자 변제안'은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밖에도 경제정의실천연합과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 모여 규탄 시위를 벌이고 강제동원 문제뿐 아니라 후쿠시마 오염수, 독도 문제까지 일본의 요구에 정부가 단호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맛칼럼리스트 황교익씨는 당시 기시다 총리가 오므라이스 노포 '렌가테이'로 윤 대통령을 초대한 의도를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시 "국가 정상 외교에서는 아주 사소한 것에도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데, '을미사변'이 일어난 해이자 일본이 청나라를 물리치고 조선에 대한 주도권을 잡은 해에 개업한 가게에 윤 대통령을 초대한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한다면 정치 때려치워야 한다"며 강한 어조의 비판을 내놨습니다.
"이임 파티, 왜 우리 세금으로?"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를 한국으로 초청해 대통령 돈도 아닌 우리가 낸 세금으로 이임 파티를 해준다고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는 최근 국내 여론과 무관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특히 민감한 '독도'까지 일본이 간섭하면서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그동안 모든 정부에서 실시했던 '독도방어훈련'을 이례적으로 비공개 실시한 것은 물론 어느덧 '한미일 동맹'이란 기조 속에 독도 해상은 일본 해상 자위대 함정들의 훈련장으로 변했습니다. 더군다나 일본의 일부 정치인들은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큰소리를 치기도 합니다. 정부는 한일 관계가 좋아졌다고 하는데, 역설적으로 명백한 우리 영토인 독도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벌어지는 상황이 된 것이죠. 일본만 한일 관계 개선의 수혜를 누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모든 걸 퍼주고도 얻지 못한 반잔
정부는 과거사 해법을 발표하면서 "우리가 물 잔을 먼저 채우면 일본이 나머지 반은 채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기대는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지금껏 현 정부의 대일 외교를 비판했던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는 '우리 정부가 모든 걸 쏟아붓듯 퍼주고도 반 잔의 물도 얻어먹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일본에게 퍼줬던 것을 나열해 보면, 강제동원에 대한 피해배상 문제부터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를 위한 승낙, 네이버 라인 사태,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발판 마련, 일본 군함의 독도 훈련 등 저자세로 일관한 사안들이 매우 많습니다. 여기에 광복절을 전후로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의 우려스러운 역사관까지 그야말로 허물어진 한일관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윤석열 정부가 기시다 총리의 '졸업 여행'까지 살뜰히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험악한 국민 여론에 기름까지 붓고 있는 셈입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 아래로 무너졌습니다. 이러다 퇴진 압박을 받았던 기시다 내각처럼 10~20%대 지지율로 내려앉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닐까요.
이진하 기자 jh3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