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뛰어넘는 선전으로 온 국민을 들뜨게 했던 파리 올림픽이 끝난 지 20여일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몇몇 짜릿했던 장면들의 여운이 남아있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하지만 올림픽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느꼈던 그 감동, 다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난 29일부터 오는 9일까지, 파리에서 장애인올림픽, 즉 ‘패럴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올림픽만큼 관심을 받지는 못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더 많은 감동적 인물과 감동적 사연, 감동적 플레이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더군요. “올림픽에서는 영웅이 탄생하지만, 패럴림픽에는 영웅들이 출전한다.” 토마토Pick이 패럴림픽의 역사와 우리 선수단 현황 등을 이모저모 짚어봤습니다.
평등과 극복의 역사
1988년 서울에서 정착
패럴림픽은 나치 독일에서 영국으로 망명한 신경외과 의사 루트비히 구트만 박사가 2차대전 때 척추를 다친 영국 퇴역 군인들을 돕는 데서 시작됐습니다. 처음엔 ‘스토크맨더빌(구트만의 병원이 있던 지역) 대회’로 불렸지만, 점차 참가국이 늘어났고, 1960년 로마에서 23개국 400명의 선수가 출전하는 대회가 열렸습니다. 당시 상이군인 외에 일반 장애인 선수들도 참여하게 되면서, 로마가 제1회 패럴림픽 개최지로 기록됐습니다. 우리나라는 3회 대회(1968년 이스라엘) 때부터 참가를 시작했습니다. 패럴림픽 선수들은 1회 대회 이후 비장애인 올림픽 선수들과 같은 대우를 받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해왔습니다. 올림픽에 비하면 여전히 어려운 환경에 맞서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장애인권이 신장되는 것에 말 맞춰 지금은 경기 환경이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특히 ‘1988년 서울’은 패럴림픽 역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988년 열린 하계 패럴림픽 때부터 올림픽이 끝난 직후 바로 그 도시에서 올림픽 때 사용된 시설을 사용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후 동계 패럴림픽도 1992년부터 올림픽 때 사용된 시설을 사용하고 있지요. 파리가 통산 세 차례(1900년, 1924년, 2024년)나 올림픽을 개최했지만 패럴림픽이 열리기는 처음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도전하는 선수들
참가 만으로 영웅이 되다
이번 패럴림픽 개회식도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야외에서 열렸습니다. 센강에서 시작한 올림픽과 달리 패럴림픽은 프랑스의 상징 중 하나인 개선문에서 출발해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 콩코르드 광장까지 행진하는 것으로 대회의 막을 올렸죠. 개회식 때 129번째로 입장한 난민 선수단은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에리트레아, 키리바시, 코소보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번에 처음으로 패럴림픽에 출전했습니다. 모두들 저마다 각자의 감동 스토리 하나 쯤은 품고 있을 텐데요, 이번 패럴림픽을 앞두고도 여러 선수들이 외신 등에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상어의 습격’ 1년 뒤… :미국 장애인 수영 국가대표인 알리 트루윗(24)은 지난해 5월 예일대를 졸업한 뒤 카리브해 인근에서 스노클링을 즐기던 중 상어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세 차례 큰 수술을 받았지만 왼쪽 무릎 아랫부분을 절단하는 불행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트루윗은 좌절하지 않고 근력 운동을 비롯해 트라우마 치료에 집중했고, 사고 1년 만인 지난 6월 미국 패럴림픽 대표에 선발돼, 자유형과 배영 등에 출전합니다. 다시 물에 들어가는 것도 힘겨울 텐데, 대단한 정신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부의 올림픽-패럴림픽 도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아내와 이번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에 도전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지난달 9일 미국의 타라 데이비스우드홀(25)은 올림픽 여자 멀리뛰기 우승을 차지했는데요, 우승 뒤 관중석에서 응원 중인 남편인 헌터 우드홀에게 뛰어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남편 우드홀은 1999년 종아리뼈 일부가 없는 상태로 태어났지만, 의족을 차고 꾸준히 달리기를 한 끝에 고교 대표가 되었고, 고교육상선수권 대회에서 아내를 만났습니다. 우드홀은 지난 도쿄 패럴림픽 400m에서 동메달을 땄는데, 이번엔 100m와 400m에서 금메달을 노리고 있습니다.
-임신 7개월의 양궁 선수 :영국 양궁 선수 조디 그린햄(31)은 임신 7개월이지만 이번 패럴림픽에 출전하기로 했습니다.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그린햄은 “동료들이 '시상대에서 양수가 터질 수 있다'고 놀린다. 정말 대단한 일이 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림햄은 선천성 질환인 단지증으로 인해 엄지손가락 절반 외엔 다른 손가락이 없고, 팔 길이도 다르고, 왼쪽 어깨도 발달이 멈춘 상태라고 합니다. 양궁을 하기엔 최악의 조건인데, 그렇기 때문에 그린햄의 도전이 더 감동적인 셈이죠.
-영화 스텝, 칼을 들었다 :한국팀에도 특별한 이력으로 화제를 모은 선수가 있습니다. 펜싱에 출전하는 조은혜 선수는 2017년 낙상 사고로 휠체어에 의지하기 전까지는 영화인이었습니다. 조 선수는 영화 ‘범죄도시’의 분장 팀장을 맡아 마동석 배우 등의 스타일을 책임졌고, '은밀하게 위대하게', '굿바이 싱글'에 출연한 배우들도 조 선수의 손을 거쳤습니다. 영화계 지인들이 지금은 펜싱 선수로 변신한 그를 열렬히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해에 열린 항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 2개를 땄습니다.
177명 한국 선수단
역대 최대 종목 출전
우리나라는 17개 종목에서 선수 83명(남자 46명, 여자 37명)을 포함한 177명의 선수단이 이번 파리 패럴림픽에 출전했습니다. 선수단 규모 자체는 2021년 열린 도쿄 패럴림픽보다 줄었지만, 역대 최다 종목 출전입니다. 한국 선수단의 목표는 금메달 5개로 종합 순위 20위이지만, 내심 올림픽 때처럼 그 이상의 성적을 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패럴림픽에는 올림픽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종목들이 있는데요, 대표적인 게 골볼과 보치아입니다.
-골볼 :시각장애인 종목인 골볼은 소리나는 공을 이용해 상대편 골대에 공을 넣는 팀스포츠입니다. 한국 여자 골볼 대표팀은 세계 랭킹이 높지 않았지만, 2년 전 겨울 포르투갈에서 열린 골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을 꺾고 준우승을 차지하며 이번 패럴림픽 출전권을 따냈습니다. 이는 1996년 애틀랜타 패럴림픽에 출전한 이후 28년 만의 일입니다. 28년 전 선수로 출전했던 정은선 감독이 이번엔 대표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지난해 항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때 동메달을 땄던 여자 골볼팀이 이번엔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보치아 :경기 방식으로만 보면 '여름에 하는 컬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표적구를 향해 공을 굴리거나 발로 차서 공을 가까이 놓은 순서대로 점수를 얻는 방식입니다.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보치아가 차지하는 의미는 각별합니다. ‘패럴림픽의 양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의 독보적인 금메달 행진 때문이죠. 보치아 대표팀은 1988년 서울 패럴림픽 때부터 단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친 적이 없습니다. 이번이 10개 대회 연속 금메달 도전입니다. 2021년 도쿄 대회 때 금메달 명맥이 끊길 뻔 했지만, 혼성 단체전에서 연장전 끝 극적인 역전승으로 기록을 이어나간 바 있습니다. 이번에도 우리 선수들의 선전을 기대해 볼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