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토마토Pick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딥페이크 범죄에 대해 조명했습니다. 딥페이크는 AI 기술의 고도화로 일어난 역기능을 보여준 사례였는데요. 이 과정에서 텔레그램은 사실상 무법지대 플랫폼 역할을 했습니다. 사실 페이스북과 트위터, 카카오톡 등 메신저와 SNS는 다양한데요. 그러나 범죄 등 사회적 물의를 빚은 이슈가 불거졌을 때는 대부분 텔레그램이 조명됐습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 텔레그램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을 땐 언제일까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왜 텔레그램에 대한 인식이 나쁠까요? 토마토Pick이 세계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메신저, 텔레그램을 진단했습니다.
세계 4위 메신저
텔레그램 대두
메신저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게 스마트폰인데요. 사실 2G 휴대폰에서 3G로 넘어가면서 메신저 업계가 크게 요동쳤습니다. 2000년대 우리나라에서 인기였던 ‘미니홈피’는 스마트폰의 대두와 함께 몰락했고, 이 자리를 메신저들이 대체했는데요. 국내에서는 카카오가 이 자리를 독식했으며, 해외는 라인 등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현재까지도 각광받는 메신저는 위챗, 인스타그램(DM), 페이스북 메신저, 디스코드 등이 있는데요. 텔레그램은 우리나라에서 카카오톡에 비해 이용률이 저조하지만 해외에서는 세계 4위의 메신저 앱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텔레그램은 어떤 매력이 있기 때문에 이처럼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였을까요?
‘철통 보안’ 텔레그램
위상 높인 비결
텔레그램은 2013년 출시 이후 종단간 암호화 기술을 기반으로 한 비밀 대화 서비스로 많은 사용자를 모았습니다. 종단간 암호화 기술은 송신자 기기(스마트폰)에서 메시지가 즉시 암호화되고 서버를 거쳐 수신자 기기에 도착하면 이때 복호화되는 것인데요. 서버를 수색하더라도 발신자와 수신자 외에는 메시지 내용을 확인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보안성은 국내에서도 많은 각광을 받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인을 포함해 여러 직군에서 텔레그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원내대표 시절 윤석열 대통령과 텔레그램을 통해 소통한 게 대표적이죠. (이때 '체리따봉' 이모티콘도 덩달아 유명해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텔레그램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지난 2014년인데요. 카카오톡 사찰 논란 때 국내 메신저에 대한 불신과 함께 텔레그램이 대안으로 부상하기도 했습니다.
-카카오톡 사찰 논란 :지난 2014년 6월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집시법 위반으로 체포됐는데요. 당시 경찰은 정 부대표가 묵비권을 행사하자 검찰을 통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고 검찰은 이를 수용했습니다. 문제는 당시 압수수색 과정에서 카카오톡 대화 로그를 카카오톡 측에 요구, 제공받은 것인데요. 이로 인해 ‘사이버 사찰’이라는 논란이 제기됐습니다. 특히 검찰의 인터넷 공간에 대한 검열 강화 관련 대책회의에서 다음카카오 측 간부가 참석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일이 커졌습니다. 당시 ‘텔레그램으로 갈아타겠다’는 이른바 '텔레그램 망명' 바람이 불었고, 국내 텔레그램 이용자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보안’ 텔레그램
범죄 온상으로
정부의 검열에 반발해 주목을 받았던 텔레그램이 최근에는 범죄의 온상이 됐습니다. 온라인상에 있었던 온갖 나쁜 일들에는 텔레그램이 연관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실제 근래 벌어졌던 굵직한 사건들에는 대부분 텔레그램이 직간접적인 통로 역할을 했습니다.
-N번방 사건 :2020년 알려진 최악의 사이버 성범죄 사건입니다. 미성년자 등 여성 수십여 명에게 성적 학대를 하고 성착취 영상물을 찍도록 협박했으며, 그 영상을 판매한 것인데요. 박사방 등 여러 ‘방’이 있었는데 이것은 대부분 텔레그램을 통해 개설됐습니다. 이로 인해 텔레그램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바닥을 치게 됐습니다. 텔레그램을 휴대폰에 설치한 것만으로도 ‘그걸 왜 깔아두느냐’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정도였죠.
-서울대 N번방 사건 :서울대학교 졸업생들이 동문 여학생들의 얼굴 사진을 합성한 허위 음란물을 만든 사건입니다. 굴지의 명문대학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 때문에 사회적 지탄이 잇따랐는데요. 지난 28일 법원은 이 사건의 공범인 박모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박씨는 2020년 7월부터 지난 4월까지 허위 영상물 400개를 제작하고 불법 촬영물 1700여개를 유포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이를 유포한 창구가 바로 텔레그램이었고요.
-2024년 딥페이크 논란 :서울대 N번방 사건과 유사한 형태로 텔레그램 단체채팅방에서 일반인 여성을 대상으로 딥페이크 음란물을 제작, 유포하는 디지털 성범죄입니다. 중고생부터 대학생, 여군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으며 피해자들이 SNS 등에 올린 사진을 이용했습니다. 몇몇 단체채팅방에는 수천 명이나 접속해 있어 피해자 수도 천정부지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외 논란 :상술한 논란들 외에도 텔레그램은 온갖 부정적인 이슈에서 창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이뤄진 마약거래도 상당수가 텔레그램에서 진행됐으며, 심지어 고등학생들까지 마약을 살 수 있는 지경입니다. 그 외에도 불법 무료 스트리밍 사이트 ‘누누티비’가 텔레그램을 통해 접속 주소 링크를 공지하는 등 자신을 알리는 창구로 텔레그램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해외서도 논란?
체포된 CEO
우리나라에서 텔레그램을 매개로 한 딥페이크 논란이 한창 확산될 때 텔레그램에는 또 하나의 악재가 터졌습니다. 바로 개발자이자 CEO인 파벨 두로프가 24일(현지시각) 프랑스에서 입국 중 체포된 것인데요. AP통신 등 외신의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검찰은 파벨 두로프가 마약 거래와 자금세탁 공모, 아동 음란물 유통 조장 등 12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 외에도 사이버 범죄 및 금융 범죄 수사 협조를 거부한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라고 밝혔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논란이 터진 가운데 프랑스에서 체포된 것입니다. 두로프는 러시아, 프랑스 등 여러 나라의 국적을 갖고 있는데요. 유독 러시아만 두로프 체포를 강하게 비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러시아는 이번 체포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고 의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협조 요청에도 ‘묵묵부답’
철통 보안의 역기능
이렇듯 텔레그램은 국내외를 안 가리고 전세계에서 사랑받습니다. 좋게도 나쁘게도 말이죠. 이는 파벨 두로프의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하게 반영된 덕인데요. 텔레그램은 보안의 순기능과 함께 보안의 역기능도 철저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숱한 논란들이죠. 정확히는 그 논란을 대하는 텔레그램의 태도입니다. N번방 사건이 터졌을 때 텔레그램은 우리나라 경찰의 수사 협조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고객의 익명성과 보안성을 지켜주기 위해서죠. 때문에 수사기관은 범죄행위로 의심되는 텔레그램 대화방에 일일이 잠입하는 형태로 가해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는 타국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국가와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철저하게 이용자를 지켜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말이죠.
표현의 자유 vs 집단 안정
텔레그램이 던지는 질문
텔레그램의 행보, 그리고 파벨 두로프 체포는 많은 물음을 던졌습니다. N번방 사태를 겪은 우리나라는 파벨 두로프를 체포한 프랑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임시 차단조치를 해야 한다는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이 대표적이죠. 반면 서양은 프랑스를 비난합니다. 두로프를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죠.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는 “두로프 체포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라며 즉각 석방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첨예하게 엇갈리는 주장들에는 결국 표현의 자유와 집단의 안정을 위한 검열 중 어느 게 더 중요하냐는 근본적인 물음이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집단의 안정, 과연 더 중요하고 지켜져야 할 가치는 어떤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