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84)가 방글라데시의 과도정부를 이끌게 됐습니다. 그런데 유누스는 과도정부가 출범하기도 전부터 대국민 성명을 내고 “진정하고 이 나라를 세울 준비를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방글라데시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토마토Pick 최근 이어졌던 방글라데시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그 원인을 짚어봤습니다.
1개월 이어진 시위
시작은 정부 일자리
약 300명 이상이 사망하는 등 방글라데시의 반정부시위는 격렬했습니다. 왜 이런 시위가 벌어졌을까요? 시위의 계기는 청년 일자리였습니다. 정확히는 공무원 일자리인데요. 방글라데시 정부는 독립전쟁 유공자 자녀의 공무원 할당제를 추진했습니다. 공직 채용 시 전체 인원의 30%를 1971년 독립전쟁 유공자 자녀에게 할당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극심한 실업난을 겪는 방글라데시 청년들에게 치명적인 정책이었는데요. 방글라데시의 면적은 한반도 전체보다 작은 반면 인구는 1억7000만명에 육박합니다. 이런 가운데 방글라데시의 실질적 실업률은 40%대에 육박하는 현실입니다. 이를 두고 CNN은 “매년 대학 졸업자 50~60만명이 1000개가 채 되지 않는 공무원 일자리를 놓고 경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공무원의 30%를 '혈통'만 보고 뽑겠다고 한 것입니다. 고용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공무원은 최고의 일자리였는데요. 그 자리를 앗아간 것에 분노한 겁니다. 물론 단순히 일자리를 가져가서만은 아닙니다. 청년들을 분노케 한 것은 ‘독립유공자’라는 포장지 안쪽의 기득권이었습니다.
독립운동가 친인척들
독재정권 기득권으로
사실 이번에 축출된 셰이크 하시나 총리는 방글라데시에서 국부로 추앙받는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의 딸입니다. 현 여당인 아와미연맹(AL)도 1954년부터 있던 유서 깊은 정당으로,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할 때 그 주역이었습니다. 심지어 하시나 총리의 정적인 칼레다 지아조차도 독립전쟁 당시 해방군 사령관이던 지아우르 라흐만의 아내입니다. 즉 방글라데시에서는 수십 년간 과거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들이 파벌이 이뤄 기득권 다툼을 벌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공무원 특혜 채용 역시 단순히 일부를 우대하는 걸 넘어 기득권 세력들이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는 기만이었던 셈입니다. 사실 올해 초 있었던 방글라데시 총선에서도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었는데요. 논란 속에 재집권한 정부가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 정책을 강행해 그동안 켜켜이 쌓였던 분노가 폭발한 셈입니다.
-2024년 방글라데시 총선 :지난 1월 치러진 방글라데시 총선은 야당 주요 인사들이 대거 체포된 가운데 치러졌습니다. 이에 주요 야당인 방글라데시국민당(BNP)은 총선에 불참했지만, 정부는 투표를 강행했는데요. 투표율도 40%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그 결과 하시나 총리는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공무원 채용이 부른 시위
사망자까지 나왔다
학생들의 시위는 6월달부터 시작했는데요. 7월 들어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100명이 부상당하고 사망자까지 나오면서 사태가 격화됐습니다. 같은달 16일에 이르러서는 전국적인 폭력사태로 확산됐는데요. 그러자 정부는 전국 대학교에 휴교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는데요. 경찰은 시위대에 최루탄과 고무탄을 쐈으며 당국은 시위대 집결을 막기 위해 무선 인터넷을 차단했습니다. 시위의 중심이던 수도 다카의 대학교에 검문소를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실탄을 사용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는데요. 정부의 강경 대응에도 시위는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야당이 시위대를 돕겠다고 가세했죠. 결국 법원이 중재에 나섰는데요. 방글라데시 대법원은 전체 공직의 93%는 기존대로 배분하고, 2%는 소수민족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5%만 독립 유공자 자녀에게 할당하도록 중재안을 냈습니다. 그러나 외신들에 따르면 이미 시위 과정에서 200명이 숨지고 수천 명이 다친 뒤였습니다.
‘낯설지 않은 모습’
실탄까지 꺼낸 정부
소요상태로 접어든 시위가 재개된 것은 7월말 들어서입니다. 학생들 측은 △구금된 학생단체 지도부 석방 △하시나 총리의 사과 △책임자 해임 등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시위가 재개됐는데요. 이제 시위는 단순히 공무원 할당제에 반대하는 시위로 그치지 않고, 반정부·민주화 시위로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하시나 총리는 시위대를 향해 “학생이 아니라 테러리스트”라며 강경 대응을 주문했습니다. 시위대도 강하게 맞섰는데요. 언론에 따르면 40만명이 시위에 나섰습니다. 경찰서나 정부 건물 등을 대상으로 한 방화가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진압하다 목숨을 잃은 경찰을 포함해 4일 하루에만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누적 사망자는 300명이 넘습니다. 결국 하시나 총리는 사임을 선택했습니다. 독재정권에 대항해 많은 피를 흘렸던 우리나라로서도 낯설지 않은 모습입니다.
영웅의 딸, 초라한 결말
군 헬기 타고 떠난 하시나
민심의 화난 불길은 결국 정권을 꺾었습니다. 하시나 총리는 지난 5일 오후 총리직을 사임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말은 추함 그 자체였습니다. 하시나 총리가 여동생 셰이크 레하나와 함께 군용 헬기를 타고 인접국 인도로 도피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언론을 통해 먼저 알려졌는데요. 성난 군중 수백명이 문을 뜯고 들어가 총리 관저를 장악하기도 했습니다. 방글라데시 군 참모총장 와케르-우즈-자만은 기자회견을 열고 하시나 총리가 사임했다고 밝혔는데요. 그는 “나라가 큰 피해를 보았고, 경제가 타격을 입었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폭력을 멈출 때가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AFP통신에 따르면 하시나 총리는 자신의 연설을 녹음하길 원했지만 그러지 못했는데요. 사실 퇴임에는 군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망자가 300명을 넘어서면서 더는 총리를 지지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군 수뇌부가 하시나 총리를 등진 것이죠. 연설도 녹음하지 못하고 쫓겨나듯 인도로 떠날 때 군용기를 탄 게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새 국면 접어든 방글라데시
위기 딛고 일어설까
군부와 대학생 지도부 등은 협의를 통해 과도정부를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 8일 과도정부가 수립됐고, 빈곤퇴치운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해 이름을 알린 유누스가 최고 고문으로서 과도정부를 이끌게 됐습니다. 과도정부는 헌법에 따라 의회해산 90일 이내에 총선을 실시하고 이를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안들이 산적해 있는데요. 우선 야권이 즉각 총선 실시를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BNP의 총재 직무대행 타리크 라만은 “총선은 즉시 실시돼야 하며 권력은 총선을 통해 선출된 대표들에게 넘겨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시나 총리가 사임했지만 여당이던 아와미연맹이 아직 정치를 계속할 예정이므로 이를 견제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실제로 하시나 전 총리의 아들 사지브 와제드 조이는 “내 가족은 더 이상 정치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 당(AL)의 지도자와 당원들이 공격받는 상황에서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며 정치 지속 의지를 밝혔습니다. 아울러 교도소 탈옥이나 약탈, 소수민족 공격 등 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도정부가 과연 이런 혼란을 극복하며 무사히 선거를 마치고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할 수 있을까요? 방글라데시의 향후 90일이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