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의 폴 카가메 대통령이 4선을 확정했습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90%가 넘는 지지세를 보이며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였습니다. 아프리카에는 12억이 넘는 인구와 50여개가 넘는 국가가 있는데요. 폴 카가메는 이 많은 국가의 수장 중 가장 유명한 인사로 꼽힙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르완다의 박정희’로도 알려졌는데요. 오늘 토마토Pick은 르완다의 4선 대통령 폴 카가메를 알아봤습니다.
르완다 대선 시작
4선 점쳐지는 독재자
지난 15일(현지시각) 동아프리카 르완다에서는 대선과 총선이 동시에 치러졌습니다. 르완다 매체 더뉴타임스는 이날 오전 7시께부터 전국 2600여 투표소에서 투표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는데요.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약 1400만명의 르완다 국민 중 유권자는 950만여 명입니다. 대선은 3선 대통령인 폴 카가메와 민주녹색당(DGP) 프랑크 하비네자 대표, 무소속의 필리프 음파이마나 후보의 삼파전으로 치러졌는데요. 개표는 투표 종료와 동시에 진행되지만 선관위 공식 잠정 개표 결과는 20일, 최종 개표 결과는 27일 나올 예정입니다. 그러나 선거가 치러지기도 전부터 국내외 모두 카가메 대통령의 4선을 점쳤습니다. 왜 그럴까요? 카가메 대통령에 대한 르완다의 압도적 지지 때문입니다.
선거만 치르면 90%
폴 카가메 압도적 인기
아프리카에는 여러 독재자들이 있지만, 카가메 대통령은 가장 유명하고 해외에서의 평가도 좋은 인사입니다. 결정적으로 자국 내에서 인기가 많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는데요. 그는 2003년 첫 대선부터 2010년, 2017년의 세 차례 대선에서 모두 90% 이상의 압도적 득표율을 선보였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그의 인기는 꺾이지 않았는데요. 개표작업이 79% 진행된 시점에서의 중간집계에서 득표율이 99.15%라는 허무맹랑한 기록도 나왔습니다. 프랑크 하비네자 후보와 필리프 음파이마나 후보는 각각 0.53%와 0.32%를 득표했습니다. 이는 러시아에서 장기집권을 이어가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난 4월 대선 득표율(87%)조차 훌쩍 뛰어넘는 수치입니다. 나아가 이번 당선으로 그는 30년 장기집권을 목표로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르완다 내전 종결
국민영웅 폴 카가메
20년이 넘는 장기집권이 강렬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그는 집권하기 전부터 르완다의 국민영웅으로 꼽혔습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르완다 내전’을 종결한 게 바로 그이기 때문입니다.
-르완다 내전 :르완다와 접경국 브룬디는 소수 주류계층 투치족과 다수 피지배계층 후투족 간의 갈등이 컸습니다. 양측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정권을 놓고 갈등을 벌였으며 상대방을 억압했는데요. 1990년대 들어 유엔(UN) 등의 중재로 두 부족은 잠정정부를 구성했습니다. 그러나 1994년 하브자라마나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양쪽은 다시 갈라지는데요. 극우 후투족 일부는 투치족이 이 사건에 개입했다고 보고 투치족 출신 총리 등 3명, 벨기에 평화유지군 11명을 살해합니다. 이에 투치족 반군 RPF도 반발, 후투족 중심의 정부를 공격해 대규모 항쟁으로 번졌는데요. 내전이 계속되면서 사망자는 약 50만명, 난민은 300만명으로 늘었습니다. 100여일이 넘는 내전에서 투치족 약 100만명 이상이 죽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내전은 투치족 반군이 키갈리를 제압하면서 종식되는데요. 정권을 잡은 투치족 반군은 신정부를 출범시키는 한편 후투족 인사들을 대통령 및 총리에 임명시키는 등 융화정책을 펼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게 폴 카가메 중장인데요. 그는 부통령과 국방장관 등을 맡아 실권을 쥐고 후투족 구정부군과 무장해제 및 난민 귀환 등을 협의했습니다. 이후 그는 2000년 4월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했으며, 2003년 8월 대통령 선거를 실시했습니다.
르완다 대개혁
카가메 인기 이유
이처럼 카가메 대통령이 영웅으로 추앙받는 것은 수십 년간 이어지던 부족 간의 갈등을 종식하고 르완다를 민주주의가 기능하는 국가로서 정착시켰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뿐만은 아닙니다. 그는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등 다방면에서 르완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부족 간 통합 :카가메 대통령은 후투족과 투치족 간 사적 보복을 금지했습니다. 식민통치 시절의 인종 표기도 폐기하는 등 부족 간 통합에 주력했습니다.
-차별 금지 :인종·종교 등 그 외 차별도 강력하게 금지됐습니다. 특히 주목되는 게 여성의 사회진출인데요. 르완다는 여성 의원 할당제를 시행한 국가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 성평등 지수 순위가 10위권 안에 들기도 했습니다.
-교육 :카가메 대통령이 집중적으로 개혁한 분야 중 하나인데요. 총예산의 17%를 교육에 할당하기도 했습니다. 초·중등 12년 의무 무상 교육을 시행했으며 1994년 1개에 불과했던 대학교 수도 2024년 50개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의료 :2008년 르완다는 전 국민 의료보험도 의무화했습니다. 의료 시스템이 완비된 덕에 르완다는 코로나19에도 다른 중앙아프리카 국가보다 위기를 잘 넘겼다고 평가받았습니다.
-경제발전 :르완다는 경제면에서도 눈부신 성장을 이뤘는데요. 연평균 8%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카가메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인물로 꼽고 새마을운동을 르완다에 이식한 것으로도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카가메 대통령은 국내에서 ‘르완다의 박정희’로도 알려졌습니다.
칭찬 일색이지만
독재 이면도 산재
이런 치적을 들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참혹한 인종 대학살(1994년) 이후 르완다가 괄목할 만한 회복을 보였다며 카가메 대통령을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카가메 대통령은 해외에서도 평가가 좋습니다. 그러나 비판 역시 존재하는데요. 20년이 넘는 집권기에서 보아 알 수 있듯 독재가 발목을 잡습니다. 야당 등 자신에 반대하는 이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한 이력 또한 분명합니다.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2024년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르완다는 144위를 기록했는데요. 이는 소말리아(145위)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때문에 AFP통신도 이번 대선에 대해 카가메 정권이 그간 언론과 야당을 입막음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정권을 비판한 저명인사의 출마도 막았다며, 4선 당선이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꼬집었습니다. 일각에서는 그의 집권 기간 실종된 언론인이 8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선한 독재자?
그래도 독재자
이처럼 카가메 대통령은 양면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사실 이런 식의 ‘선한 독재자’ 소리를 듣는 인물들은 으레 있는데요.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룩한 박정희 전 대통령, 스스로 독재자라 칭하는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퇴임했지만 사실상 정치 왕조를 구축한 조코 위도도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종교문제에 편파적인 입장을 취하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이 대표적입니다. 치적과 치부가 분명하지만, 어쨌든 지지도는 높은 장기집권 수장들. 정부 수장으로서 뚜렷한 성과가 있으면 그만일까요? 아니면 어두운 이면을 도려내야 할까요? 많은 고민을 만드는 르완다 대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