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펠레와 마라도나로 상징되는 축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남미에서 가장 큰 두 나라는 아주 오래된 앙숙인데요. 잠시 화해 무드가 조성되다가도 어김없이 싸움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대사 철수', '관계 단절' 등이 언급되는 이번 충돌도 다르지 않은데요. 특히 양국 대통령의 성향이 정반대인 점이 영향을 크게 끼치고 있습니다. 토마토Pick이 한일관계처럼 복잡하게 얽힌 양국의 역사를 짚어봤습니다.
포르투갈-스페인 식민지
우루과이 두고 갈등 촉발
두 나라는 대항해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유럽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것인데요. 양국은 19세기가 되어서야 독립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독립 과정에서 낀 우루과이였습니다. 우루과이는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나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던 브라질의 접경지역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아메리카에서 스페인의 지배가 무너지자 포르투갈은 1816년 우루과이를 공격해 강제로 병합했고, 이후 브라질이 독립해서도 우루과이 땅은 브라질의 영토로 남게 됐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우루과이는 언어와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브라질과 상이했고 오히려 아르헨티나와 더 가까웠습니다. 때문에 독립에 대한 요구가 커졌는데 이때 아르헨티나가 개입해 우루과이의 독립을 도왔습니다. 우루과이는 그 덕에 독립에 성공했는데요. 우루과이 국기에 아르헨티나 국기와 같은 ‘5월의 태양’이 있는 것은 이러한 역사가 밀접하게 관련돼 있습니다. 아르헨티나가 우루과이 독립에 관여한 계기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관계는 본격적으로 악화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이어지게 됐습니다.
국제사회에서도 대립 계속
G4 브라질, ‘커피클럽’ 아르헨
1900년대 초반까지는 아르헨티나가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국력은 브라질 우세로 뒤집혔고, 양국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졌습니다. 21세기 들어서는 브라질이 남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위치에 올랐습니다. 브라질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를 넘볼 정도가 됐습니다. 현재 상임이사국에 가장 가까운 나라는 브라질과 독일, 일본, 인도의 4개국으로 이들을 ‘G4’라고 칭하는데요. 당연하게도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G4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막는 국가들의 모임, 이른바 ‘커피 클럽’에 아르헨티나가 소속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G4 :상임이사국 확대를 주장하며, 상임이사국 자리를 노리는 4국 연합. 독일·브라질·인도·일본의 4국인데요. 현재는 상임이사국은 미·러·중·영·프 5개국입니다.
-커피클럽 :G4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막기 위한 연합으로, 주로 G4 국가들과 경쟁관계에 놓인 국가들이 포진했습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독일을, 우리나라는 일본을, 파키스탄과 튀르키예는 인도를,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을 견제하기 위해 가입했습니다.
‘우리 사이 좋았잖아’
경제 협력했던 양국
양국은 남미에서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경쟁관계에 있지만, 나름의 협력을 했던 시기도 있습니다. 특히 1986년에는 남미공동시장(MERCOSUR, 메르코수르)의 모체가 되는 경제공동체 협력에 서명했고, 1995년에는 남미공동시장에 조인하기도 했습니다. 갈등이 있기는 했으나, 그 후로도 양국은 수차례 협력을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일례로 지난 2007년 양국은 양국 간에 무역 거래를 할 때 달러를 배제하고 상호 자국 통화를 사용하기로 합의하고, 2011년에는 양국 간 경제협력 확대와 남미 통합을 우선하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기로 합의하는 등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각종 보호무역 정책, 상호 수입규제 정책으로 반목하기도 했지만요. 최근에 들어서도 이런 모습은 변치 않았는데요. 양국은 2019년 오는 2029년 발효되는 자동차 분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2022년 10월에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3선에 성공하자 알베르토 앙헬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직접 브라질을 방문해 축하해줬습니다. 특히 수교 200주년인 지난해 1월에는 남미공동시장의 효율적 운용, 남미국가연합(UNASUR) 재활성화 추진 동의, 아르헨티나 생산 가스 브라질 공급 가능성 검토 등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남미의 트럼프’
밀레이 등장
이런 분위기를 뒤집은 것은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등장입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100%가 넘는 인플레이션과 이로 인한 경제위기로 국제금융기금(IMF)에 570억달러(약 73조7800억원) 상당의 초대형 구제금융을 받는 실정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그는 지난해 11월 중앙은행 폐지 및 달러화 채택 등 충격적인 공약을 들고 나와 당선까지 됐는데요. 이후 아르헨티나는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크게 바뀌고 있습니다. 특히 외교 면에서 주목되는데요.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8월 브릭스(BRICS) 가입을 승인 받았지만 밀레이 대통령은 이를 거부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또 오랜 협력관계이던 스페인과의 관계도 틀어졌는데, 단교 이야기가 나올 만큼 대립 수위가 높습니다.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국. 2009년부터 해마다 회동하는 등 연대 움직임을 보였으며 이란·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에티오피아 등도 줄줄이 합류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아르헨티나 관계 :양국은 식민지 관계였던 만큼 종교·언어 등에서 비슷한 면이 있어 교류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스페인 제1의 통신사 ‘텔레포니카’, 인프라 기업 ‘아베르티스’, 유럽 최대 은행인 ‘산탄데르 은행’ 등이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중남미에서 매출을 올렸는데요. 최근 양국 정상들의 갈등으로 양국 관계도 악화되고 있습니다. 극우 성향의 밀레이 대통령은 스페인 극우 복스(Vox)의 행사에 참여해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부부를 비난했으며, 스페인 측의 사과 요구도 거부했습니다.
대척 선 아르헨-브라질
중남미 전체에 영향 미칠 수도
최근 아르헨티나가 브라질과 빚고 있는 갈등 수위는 스페인의 경우보다 더 높아 보입니다. 밀레이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양측은 여전히 정상회담 한 번 갖지 못했는데요. 이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밀레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밀레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룰라 대통령을 겨냥해 “부패한 공산주의자”, “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독재국가와는 관계를 끊을 것”이라는 등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한 바 있는데요. 양국 정상의 직접적 경쟁은 양국 관계뿐아니라 중남미 경제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최근 밀레이 대통령은 파라과이에서 열린 남미공동시장 정상회의에 불참했는데요. 대신 그는 브라질 우익단체의 집회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에 참석했습니다. 특히 이번 남미공동시장 정상회의에서는 그간 지지부진했던 유럽연합(EU)과의 FTA나 일본, 중국과의 FTA 협상에 대해서도 논의할 전망이었는데 핵심 주요국인 아르헨티나의 밀레이 대통령이 발을 뺀 것입니다. 양국의 트러블이 남미 전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셈이죠. 오랫동안 협상과 경쟁을 반복했던 두 나라가 이견을 좁히고 다시 협력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밀레이와 룰라, 두 대통령의 행보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