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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결정하는 것
어느덧 오십춘기가 코앞이다. 오십대의 질풍노도가 또 어떻게 나를 쥐고 흔들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질풍노도는 비단 사춘기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10대에 시작한 그것은 이십춘기, 삼십춘기를 지나 사십춘기에도 여전히 내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하여 <인사이드 아웃2>에서 새롭게 등장한 ‘불안’이가 ‘기쁨’이에게로 다시 운전대를 넘겨주었다고 해서 라일리의 행복이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은 절대 그렇게 흘러가지 않으니까. 또 그렇게 흘러가는 인생이 마냥 좋은 것도 아니다. 그것을 아는지 다행히 기쁨이도 이렇게 말한다.
“기쁨이 가는 곳에 슬픔도 같이 가야지!”
1편의 기쁨, 슬픔, 소심, 버럭, 까칠에 이은 2편의 불안, 당황, 부럽, 따분 정도가 감정의 전부라면 세상살이가 그나마 좀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정은 실로 다양하다. ‘오만 가지 감정이 든다’는 말도 있잖은가. 게다가 감정은 다층적이고 다면적이기까지 해서 내 마음을 나조차 모를 때가 허다하다. 그러니 타인과의 소통은 좀처럼 쉬운 게 아니다. 내 감정을 정확히 알고 타인의 감정도 충분히 짐작되어야 비로소 소통의 길이 열린다.
중요한 건 내 감정을 정확히 알아도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고 전달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는 사실이다. 영화에서 라일리는 삼총사로 지내는 두 친구가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한다는 얘기를 듣고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 3일간의 하키캠프가 지옥이 될 뻔하게 일이 커진 것은 애초에 라일리가 친구들에게 느낀 서운함을 적시에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이가 어린 탓으로 돌리기엔 어른이 된 우리들에게서도 그런 모습들은 자주 발견되기에 군색할 뿐이다.
그런 감정의 억압 혹은 변장은 쿨하고 유쾌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에 기인하기도 한다. 기쁨이가 라일리에게 심어 놓은 “나는 좋은 사람이야(I'm a good person)!”라는 자아인식이 항상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그 인식이 바로 그런 감정의 억압과 변장을 유도하고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가장 건강하다고 생각되는 모습은 바로 솔직하게 나를 표현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은 선한 의지이다. 하지만 모든 감정 특히 부정적 감정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전달하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결국 이 모든 과정은 ‘관계’라는 종착지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나와 상대의 감정을 아는 일, 올바르게 소통하는 일은 바람직한 관계형성을 위한 필수 요소라는 말이다.
“라일리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결정할 수 없어.”
라일리를 조종하려드는 불안이를 위해 기쁨이는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몇 가지가 아닌 총체적 감정이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그러나 관계의 틀 안에서 다시 이 말을 해석하면 그것은 ‘나’의 범위를 넘어선다. 한 인간이 결정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교류와 상호작용이 진정한 주체적 개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춘기 시절이 중요한 것은 바로 ‘우정’의 가치를 인식하게 되는 시기라는 것. 그래서 친구들이 관계의 중심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죽을 때까지 유효하다.
왜냐고? 대답은 언젠가 명배우 브래드 피트가 수상소감으로 전한 이 말로 대신한다.
“최근에 제가 어떤 구절을 읽었는데, 누군가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를 묻고 있었죠. '가는 길(the journey)' 혹은 '목적지(the destination)'인지를 말이죠. 그리고 다른 이가 대답했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동행인(the company)'이라고요. 전적으로 그 말에 동의합니다.”
이승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