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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고통의 교훈
얼마 전 보건복지부는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을 개정한다고 발표했다가 철회했다. 개정된 안에 따르면 향후 일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분만 시 무통주사와 수술부위에 국소마취제를 투여하는 ‘페인버스터’를 함께 사용하지 못하는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거센 반발이 일자 당초의 행정예고를 철회하고 “당사자인 산모와 앞서 수렴한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개정안을 확정하겠다”며 한발 물러선 것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와 같은 정책의 뒷배경으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천공’이 꼽혔다는 사실이다. 행정예고에 앞서 개인 방송에서 천공이 “여자들 출산할 때 무통주사 맞지 마라. 고통 없이는 교훈 못 얻는다. 반성한다 생각하고 견뎌라” 등의 발언을 했고, 이것이 정책으로 이어졌다는 것.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기사를 읽고 옛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11년 전, 그리고 7년 전, 각각 첫째와 둘째를 출산했던 당시의 기억이다.
둘 다 자연분만을 했으나 첫째의 경우 초산인데다 태아의 자세가 좋지 않아 무척이나 고생을 했다. 타이밍을 놓쳐 무통주사를 맞지 못했고 그 결과 14시간 동안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엄청난 고통이나 충격 앞에서 관용구처럼 사용되는 “하늘이 노랗다”는 말이 문자 그대로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워낙 고생을 해서인지 회복도 더뎠다. 산후 한참 뒤까지도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려웠고 몸이 좋지 않으니 마음도 영향을 받았다. 출산의 감격과 기쁨을 느끼기는커녕 축 가라앉아 우울한 상태일 때가 더 많았다.
다행히 둘째는 비교적 순산이었다. 첫째에 비해 진행이 빨랐고 무통주사의 효과가 좋아 진통 시간에 비해 고통을 체감하는 시간도 짧았다. 산후 컨디션도 좋았으며 회복도 빨랐다. 몸이 가뿐하니 아기를 돌보는 것도 수월했고 좋은 기분이 전반적으로 지속되었다. 지켜보던 가족들조차 첫째 때와 너무도 다른 극심한 변화에 놀랐을 정도.
이처럼 두 번의 임신과 출산, 그것도 극명하게 다른 경험을 하면서 누구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몸에 얼마나 부담이 가고 위험한 행위인지, 의학적 조치와 상황에 따라 산모의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의 정도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그와 같은 고통이 당사자의 몸과 마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무통주사는 현대문명의 축복이자 선물이다.
한국에서는 고통을 견디는 일을 유난히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고통을 피하는 것은 나약한 것이며, 고통을 견디는 행위야말로 숭고하고 대단하다는 사고다. 몇 해 전 한 축구선수 역시 창세기 구절을 들어 “주님께서 주신 고통을 피하지 말자”며 무통주사를 맞지 말도록 아내를 설득했다고 한다. ‘극기훈련’이라는 말이 존재하고, 해병대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는 일반인들을 지켜보는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끄는 것 또한 아마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몸소 경험한 바,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을 견딤으로써 얻게 되는 교훈 따위는 없다. 있다면 오직 같은 고통을 겪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 뿐. 본래 인간의 신체는 생명 유지를 위해 몸과 마음에 위해가 되는 상황에서 고통을 느끼게끔 설계되었다. 그러한 경험을 망각하고 같은 행위를 반복해서 문제지만.
그런 의미에서 천공의 발언 중 ‘교훈’과 ‘반성’이라는 단어에서 유난히 생각이 많아진다. 무엇에 대한 교훈과 반성일까? 이러한 세상에 아이를 출산했다는 반성? 다시는 아이를 낳지 말라는 교훈? 그런 차원이라면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잘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 사회는 이미 출산율이 바닥을 넘어 소멸을 향해 가고 있으니 말이다.
한승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