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연임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 대표 본인은 공식적으로 밝힌 바 없지만, 당 내부에서는 이미 정리가 끝났다는 데에 이견이 없습니다. 오히려 논란이 된 부분은 연임이 아니라, 연임 '그 이후'입니다. 최근 갑론을박이 벌어진 민주당의 당헌·당규 개정 문제가 이런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대선 주자이자, 연임한 이 대표의 '1극 체제'를 강화하는 쪽으로만 개정이 이뤄졌다는 게 대체적 평가입니다. 당내 민주화에 역행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토마토Pick이 민주당 당헌·당규 손질을 둘러싼 논란을 두루 짚어봤습니다.
대대적 당헌·당규 개정
무슨 내용 포함됐나?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은 어떤 당헌·당규를 손질했을까요? 생각보다 항목이 많습니다. △국회의장·부의장 후보 경선 및 원내대표 선거에 권리당원 표 20% 반영 △대선 1년 전 당 대표 사퇴에 예외 규정 추가 △‘전국대의원대회’의 명칭을 ‘전국당원대회’로 변경 △당 조직 ‘민원국’을 ‘당원주권국’으로 확대 재편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 등 부정부패 관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 정지 처분을 폐지 △시·도당위원장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반영 비중을 ‘20 대 1 미만’으로 규정 등입니다. 개정안을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곳곳에 '이재명 대표 맞춤형', 또는 '이 대표 영향력 확대'로 귀결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재명 맞춤형’ 논란 왜
세부사항 뜯어보니
당헌·당규 개정을 두고 논란이 일었을 때 이 대표도 일부 조항에 대해서는 "굳이 오해를 살 필요가 없다"며 보류 입장을 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대표를 제외한 당 지도부가 개정을 밀어붙였다는 게 민주당의 설명입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당무위원회에서 당헌·당규 개정안을 의결한 뒤 기자들에게 “대표가 너무 착하다. (이 대표가) 반대를 많이 해 설득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 방어를 위해 연출된 발언이라는 의심이 들지만, 아무튼 지도부 모두 '이 대표에게 유리한 개정'이라는 점은 간접적으로 시인한 셈입니다.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당원 중심 정당 :이 대표와 친명계에서 주로 밀고 있는 주장입니다. 바뀐 항목들을 보시면 알겠지만, 당원 투표의 영향력이 당내 여러 투표에서 크게 강화됐습니다. 이 대표는 당내에서 유일하게 강성 지지층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개딸’로 불리는 팬덤의 상당수가 권리당원입니다. 권리당원 권한 강화는 곧 이 대표의 압도적 당권 장악을 의미합니다. 다른 경쟁자의 등장 자체가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대선 1년 전 당 대표 사퇴에 예외 규정 추가 :해당 규정에 따라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 대표는 다음 지방선거 공천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대선 1년 전이 되는 시점에 이 대표가 '예외 규정'을 활용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외 규정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지방선거 후보자들은 일찌감치 이 대표의 눈치를 보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예외 규정이 적용될 경우 '대권-당권' 분리라는 정당 민주주의 원칙이 크게 훼손됩니다. 당대표가 당내 대선후보 경쟁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하는데, 선수가 심판 역할까지 함께 하는 셈이 되는 것이죠.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 정지 조항 삭제 :이전에도 한 차례 갑론을박이 있었던 조항입니다. 이 대표는 '대장동 특혜 의혹' 사건 등 재판 중인 현안 외에도 최근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등으로 추가 기소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에선 이 모든 기소를 '부정부패 혐의'가 아닌, '검찰의 정치공작'으로 판단해 이 조항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아예 조항을 삭제해 논란을 원천 차단했습니다.
“왜 지금 할 이유를 모르겠다”
친문에 친명까지 반대
민주당 내에서는 이번 개정을 두고 여러 불만이 나오고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고 불필요한 개정이라는 것입니다. 친문계인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굳이 안 해도 될 개정을 추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 대표 맞춤형 개정처럼 느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우상호 전 의원도 “지혜롭지 못했다. 굳이 이런 오해를 살 일을 왜 지금 하나 싶다”고 꼬집었습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맞춤 개정이라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왜 하필 지금인지 모르겠다”고 작심 비판했습니다. 원조 친명계로 꼽히는 김영진 의원도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비판적 의견을 냈습니다. 공개적 발언을 한 인사들 외에도 불만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아 보입니다.
당헌 80조, 대의원제 축소
당헌·당규 칼질 연속
민주당이 당헌·당규에 칼질을 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 대표가 대선후보가 되고 실질적인 당의 원톱이 된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수술이 이어졌습니다. 과거 논란이 된 당헌·당규 개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당헌 80조 :당직자가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되면 사무총장이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한 조항입니다. 문재인 대표 시절 만든 핵심 개혁안으로, 지난 2022년 민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논란이 됐습니다. 표면적 이유는 ‘검찰공화국이 됐고, 민주당 의원에 대한 무차별적인 기소가 진행될 게 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대장동 의혹 등에 휘말려 있던 이 대표는 당권 도전을 노리고 있었고, 당헌 80조 개정은 ‘이재명 방탄을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잇따랐습니다. 그럼에도 당헌 80조 3항에 '검찰의 기소를 정치탄압으로 규정해 징계처분을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당무위로 넘기는 조항을 추가했습니다.
-권리당원 전원투표 :마찬가지로 2022년 8월 전당대회 직전 권리당원 전원투표를 전국대의원대회보다 우선해 당 최고 의사결정 방식으로 규정하려는 내용이 추진됐습니다. 당시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층이 당에 다수 유입돼 권리당원이 대폭 늘어난 상태였습니다. 다만 이 내용은 당 중앙위원회 투표에서 대의원들의 반발로 무산됐습니다.
-대의원 권한 축소 :이 대표 체제에서 숱하게 거론된 논란으로, '김은경 혁신위원회'가 제안한 혁신안 중 하나였습니다.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의 가치가 달라, 대의원 1표가 최대 '권리당원 60~70인분'의 표와 같은 가치를 갖는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결국 민주당은 지난해 말 대의원 1표의 가치를 권리당원 20표 수준으로 낮추는 내용으로 당헌을 바꿨습니다. ‘개딸’의 영향력이 확대됐다는 점에서 당시에도 '이 대표 사당화의 일환'이라는 반발이 일었습니다.
수혜자는 한 명뿐
민주당, 이재명 일극화
이 대표가 대권주자로 발돋움하고 당의 실권자가 된 이래, 민주당의 당헌 개정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의원 권한 축소 및 권리당원 권한 강화, 당직자의 직무 지속성 강화의 두 가지에 집중됐다는 것입니다. 이번 개정도 당 대표가 대선에 출마할 경우를 염두한 개정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기소됐을 경우라도 당직을 지킬 수 있도록 한 것은 덤입니다. 한 사람을 위한 개정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수준입니다. 민주당은 당원권 강화가 정당 민주주의의 올바른 방식이라고 주장하지만, 결과적으로 당이 '이재명 1극 체제'로 흐르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벌써부터 당내 의견의 다양성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금의 민주당이 과연 건강하다 할 수 있을까요? 이 대표와 민주당 모두가 돌아봐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