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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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손흥민 아버지의 자녀 교육
손흥민 선수 아버지인 손웅정 축구 감독이 아들 못지않게 잘 나가고 있다. 본인 축구 인생과 아들 키운 이야기를 담아 책 2권을 냈는데 둘 다 잘 팔린다. 자녀 교육 방법을 알려주는 강사로 인기를 얻고 있다. 텔레비전 인물 탐구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손웅정씨는 아들을 세계적인 축구선수로 어떻게 키워냈을까? 본인도 축구 선수 출신으로 운동장을 누볐던 경험을 그대로 잘 전수했을까? 실상은 정반대다.
손웅정씨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축구부 선수를 거쳐 현대호랑이(현 울산현대)와 일화천마(현 성남FC)에서 프로 선수로 활동했다. 1986, 1987년 국가대표 B팀(2진)으로 선발될 정도로 경기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던 어느 시합에서 아킬레스건을 다쳐, 28살 나이에 선수 생활을 일찍 끝냈다. 선수로 오래오래 뛰고 싶었는데….
손흥민과 그의 형 손흥윤이 둘 다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 아버지한테 “축구 가르쳐주세요”라고 했다. 아버지는 “축구, 무지하게 힘들어. 그래도 할래?”라고 말렸는데, 아이들은 뜻을 바꾸지 않았다.
아이들을 지도하기로 한 손웅정씨는 자기 축구 인생을 되돌아봤다. 측면 공격수로 뛰는 프로 선수였지만 상대 선수 한 명 제칠 발기술이나 개인기를 완성하지 못했다. 기본기는 없는데 성적은 내야 했다. 스피드 하나만 믿고 죽기 살기로 뛰었고 몸은 금방 망가졌다.
‘나처럼 하면 안 된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만큼은 나와 정반대 시스템을 갖추고 가르쳐야겠다’고 손웅정씨는 결심했다.
축구의 비밀이 뭔가? 발로 공을 자유롭게 다뤄야 한다. 기본기가 가장 중요하다. 손웅정씨는 발로 공을 통통 차올리며(볼 리프팅) 운동장을 도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켰다. 운동장 한 바퀴는 오른발로, 또 한 바퀴는 왼발로, 다시 또 한 바퀴는 양발을 교차해서 차올리도록 했다. 공과 몸이 하나가 돼야 했다. 공을 골대에 차넣는 게 아니라 공과 함께 걷고 공과 함께 달리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사람들은 자기 경험의 한계에 머물기 쉽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기보다는 손톱만큼 작은 것이라도 성공했던 기억을 소가 여물 되새기듯이 곱씹고 또 곱씹는다. 그것을 남한테 내세우고 싶어 한다. 손웅정씨처럼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실패했다고 규정하고 ‘나처럼 살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드물다.
손웅정씨는 말과 글에서 독특한 소통 비법도 발휘하고 있다. 직설 화법으로 자신을 망가뜨리고 낮춘다. “나는 나의 축구 이야기가 부끄럽다. 축구를 모르면서 축구를 했다. 나는 ‘마발이’(돌팔이) 삼류 선수였다. 공도 다룰 줄 모르면서 공을 찼다.” “나는 나의 축구 이야기가 싫다” “무식한 자의 독서법”(지은 책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말하는 사람이 자신을 낮추면, 듣는 사람은 긴장을 내려놓고 편안한 감정을 느끼기 마련이다. 말하는 사람이 잘난 척하면, 듣는 사람은 상대방과 비교해 자기 위신이 낮아질까 봐 긴장하기 쉽다.
김수환 추기경 생전 일화가 생각난다.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이 “추기경님은 영어도 잘하신다고 들었다”고 추켜세우자 추기경은 “저는 거짓말도 잘합니다”라고 답했다. 추기경의 ‘셀프 디스’로 참석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실패로부터 배우기. 잘난 척하지 말고 자신을 낮추기. 당연한 정답 같아도 사람들이 대개 하지 못하는 일들이다. 손웅정씨는 그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털어놓는 자녀 교육과 축구 인생 이야기가 이런 이유 때문에 매력을 발휘하고 있다.
박창식 전 국방홍보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