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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이래 유럽은 수백만 단위의 난민들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받아들인다’고 표현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됐는데요. 더는 난민을 수용하지 않는 나라가 생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는 장벽을 세우고 난민의 출입을 막는 정도에 그쳤다면, 최근엔 아예 다른 나라로 보내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토마토Pick은 ‘망명의 외주화’, 영국의 르완다법을 통해 유럽의 난민 상황을 짚어보겠습니다.
영국의 르완다법이란?
지난달 22일(현지시각) 영국 의회를 통과한 ‘르완다법’의 정확한 명칭은 ‘르완다 안전법’(Safety of Rwanda)인데요. 쉽게 말해 영국으로 온 불법 이주민들을 아프리카 국가 르완다로 보내 난민 심사를 받게 하는 법안입니다. 심사에 통과하면 난민 지위를 얻어 영국에 체류할 수 있게 되고, 그러지 못하면 르완다에 정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로써 영국의 르완다 정책이 완성된 셈인데요. 영국은 이를 위해 르완다에 2026년까지 3억7000만 파운드(약 6291억원)를 지불합니다. 영국은 착수금을 지급함으로써 르완다에 난민을 보내고, 르완다는 돈을 대가로 난민을 수용하는 겁니다.☞관련기사또 르완다로 이주하는 망명 신청자들에게는 각각 최대 3000파운드(약 520만원)를 지원합니다. 그야말로 돈 쥐여주고 내보내는 격인데요. 이 때문에 유럽 전체의 난민 문제를 다른 나라에 떠넘기는 일명 ‘망명의 외주화’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또 내란을 피해 영국까지 간 이민자들을 강제로 추방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도의적으로 적절한지에 대한 지적도 계속되는 상황입니다. 다만 영국 정부도 할 말은 있습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올해 들어 7500명이 넘는 난민들이 프랑스에서 소형 보트를 통해 영국으로 도착했습니다. 불법 이민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자 영국이 칼을 뽑은 것입니다.
영국 대법원, "르완다법은 불법"
영국 의회, 판결 무력화 법안 통과
불법 이민자를 내보낸다는 정책은 시작단계부터 찬반 대립이 뜨거웠습니다. 인권 등 여러 문제가 있는 안건의 법제화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이미 지난해 11월 영국 대법원은 르완다 이민법이 국내법상 인권 조항을 위반한다는 이유로 불법이라고 판결했는데요. 대법원은 “르완다로 이송된 망명 신청자가 열악한 대우를 받을 위험이 매우 크다”고 했습니다. 즉 르완다가 안전하지 않다고 보고, 보내진 망명자나 이주 시도자가 고국으로 다시 송환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 것입니다. 그러자 영국 정부는 르완다에 이송된 이주민의 안전을 강화하는 협정을 맺고, 상원과 하원은 르완다를 안전한 나라로 선포하는 법을 만듦으로써 대법원의 판결을 무력화했는데 그 결과가 현재의 ‘르완다 안전법’입니다. 지난해 BBC가 발표한 ‘여자 혼자 여행하기 안전한 나라’ 순위 중 르완다가 2위에 선정되면서 ‘안전하다’는 주장에 나름의 당위성도 생겼습니다. 이 법안에 대한 영국 정부의 입장은 매우 강경한데요. 영국 집권여당 보수당은 지난 4일(현지시각) 치러진 영국 지방선거에서 11개 광역단체장 중 1곳만 당선됐고, 지방의회 의석은 986석에서 513석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드는 등 야당인 노동당에게 참패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중도로의 저변 확대가 필요한 시점인데요. 그럼에도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하나의 정당으로 함께 모이기로 결심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노선 변경 가능성을 일축한 것입니다.
국제사회도 르완다법 질타
영국은 왜 르완다로 보낼까
이런 영국의 강경한 행보를 지켜보는 각국과 시민단체 등 국제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지난 2022년 6월 영국 정부가 이주자 약 30명을 르완다로 보내려 할 때 유럽인권재판소(ECHR)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한 바 있습니다.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고등판무관과 볼커 튀르크 유엔 인권고등판무관도 공동 성명을 내고 “이 법안은 영국의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방해하고 전 세계에 위험한 선례를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영국 내부에서도 비판이 잇따르는데, 영국 국교회와 감리교, 침례교 등 종교 지도자들도 공동 성명을 통해 “전쟁, 박해, 폭력을 피해 도망쳐 온 사람들이 정치적 이유로 일부 사람들에 의해 부당하게 비방당하고 있다”고 질타했습니다. 특히 르완다법 승인 이후 영국으로부터 난민이 쇄도해 골치를 겪는 아일랜드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데요.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사이먼 해리스 아일랜드 총리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각) 영국에서 넘어온 망명 신청자들을 다시 영국에 돌려보내는 법안 마련을 법무장관에게 주문한 바 있습니다.☞관련기사
영국만이 아니다
망명의 외주화 확산
그럼에도 결국 영국은 르완다로 ‘망명의 외주화’를 시작했습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망명 신청 탈락자를 르완다로 송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번 영국의 결정이 단순한 도화선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럽의 각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는 국가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습니다.☞관련기사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알바니아에 1650만달러(약 244억원)을 지급하고 EU 가입을 지원하는 대가로 난민센터를 설립, 난민들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독일 :독일의 제1야당 기독민주당(CDU)는 지난해 11월 난민 심사 기간 망명 신청자들을 안전한 제3국으로 보내자는 정책 구상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거론된 주요 제3국들은 ‘르완다법’의 르완다와 가나, 몰도바, 조지아 등입니다.
-덴마크 :덴마크는 지난 2021년 난민을 제3국으로 이송하고 난민 자격을 인정받아도 해당 국가에 머물러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습니다. 다만 자체적 이송 정책 도입은 유보했는데요. 다른 국가들과 공동 추진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도 최근 난민을 제3국으로 이송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이미 이민 문제와 관련해 영국과 긴밀히 협력한다는 내용의 이민 및 안보 협약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유럽 극우화 물결
강경한 난민 정책 힘실어
이러한 여러 유럽 국가들의 기조 변화는 난민의 폭증으로 치안 등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경제위기까지 겹치면서 정치지형이 극단화된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됩니다. 독일은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난민 정책에 공세를 가하고 있는데요. 독일 제1야당 CDU가 르완다법과 유사한 법을 낸 것도 AfD의 지지세 상승을 견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탈리아도 극우인사인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치세에서 알바니아로 난민 이주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도 극우정당인 자유당이 높은 지지율을 보이자 네함머 오스트리아 총리가 강경한 난민정책을 들고 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극우의 바람과 이를 견제하려는 각국 정치권의 정쟁이 난민 탄압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유럽의 난민정책이 향후 어떻게 변화할지 지켜볼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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