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 잡는 EU
DSA와 DMA
미국 등 최근 서방의 주요 관심사는 빅테크의 시장 독점 견제입니다. 몇몇 거대 플랫폼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고 지배력을 남용하는 것, 소위 ‘갑질’을 못하게 막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EU가 공격적으로 나오고 있는데요. 이는 구글이나 애플 등 대다수 빅테크 기업들이 미국 기업인 반면 유럽 국가에서는 이에 견줄 테크 플랫폼이 없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미국 빅테크 플랫폼에 종속되고 있는 처지인지라 더 공격적으로 나서는 것입니다. 그런 EU의 규제는 주로 두 자루의 칼자루로 이뤄지는데요. 이른바 디지털서비스법(DSA)과 디지털시장법(DMA)입니다.
-디지털서비스법(DSA) :EU가 빅테크 기업에 대한 유해 콘텐츠 검열 의무를 규정한 법입니다. 2023년 8월 시행됐으며 빅테크 기업들은 자사 플랫폼에서 허위정보나 차별적 콘텐츠, 아동학대, 테러 선전 등 불법 유해 콘텐츠를 의무적으로 제거해야 합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매출의 최대 6%의 과징금을 부과하며, 위반 사례가 계속될 경우 EU 가입국에서 퇴출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시장법(DMA) :EU가 빅테크 기업을 ‘게이트키퍼(Gatekeeper)’로 지정하고 인앱결제 강제 금지 및 자사 우대 금지, 상호운용성 확보 등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규제합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전세계 연 매출의 최대 10%, 반복 위반할 경우 최대 20%를 과징금으로 부과합니다. 2022년 3월 합의해 2024년 3월7일 본격 시행됐습니다. 현재 게이트키퍼에 지정된 기업은 알파벳(구글)·애플·바이트댄스(틱톡)·마이크로소프트·메타(페이스북)·아마존의 6곳입니다.
DSA 이어 DMA 시행
‘게이트키퍼’들 옥죈다
빅테크 기업들을 겨냥한 EU의 공세가 최근 본격화하는 양상입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의 경우 이미 DSA와 관련한 규정으로 소송을 벌였다 패소한 바 있습니다. 당초 아마존은 DSA에서 규정하는 ‘초대형 온라인 플랫폼’에 분류된 것에 반발해 이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또 이 소송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온라인 광고 관련 데이터 제공 의무를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EU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는 ‘EU의 이익이 아마존의 물질적 이유보다 우선된다’며 데이터 공개를 최종 확정했습니다. 지난 11월까지 앱스토어를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달라며 소송을 진행했던 애플도 유럽 지역에서 앱스토어 내 거래 수수료를 최대 17%로 인하하는 등 빗장을 일부 풀었습니다. 그러나 EU는 더욱 고삐를 당기고 있습니다. EU 규제 당국은 DMA가 시행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지난달 25일 애플과 구글, 메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EU 집행위원회가 이들에 대해 조사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애플 :사용자가 iOS에서 특정 소프트웨어를 쉽게 제거할 수 있도록 하고, 웹브라우저와 운영체제 기본설정을 쉽게 변경할 수 있도록 조치했는지 여부
-알파벳(구글) :경쟁사들보다 자사 서비스를 선호하도록 하는 것을 막는 DMA 규정을 준수했는지 여부
-메타(페이스북) :여러 서비스에서 개인정보를 결합해 사용하는 경우 이용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DMA 조항을 위반했는지 여부
EU는 도화선일 뿐
세계 곳곳 규제 조짐
조금 더 광범위하고 공격적일 뿐, 이러한 규제 기조를 보이는 건 EU만이 아닙니다. 이미 세계 각국은 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지난달 법무부가 애플을 반독점법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애플이 폐쇄적 생태계를 이용해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고 동종업계 업체들을 경쟁에서 배제했다는 이유입니다. 구글과도 검색엔진 독점 소송을 진행하는 상황입니다. 일본 공정취인위원회(JFTC)도 플랫폼 관련 법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지난 2022년 세계 최초로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 구글과 애플의 독점적인 상황에 브레이크를 건 바 있습니다. 틱톡의 경우 안보를 이유로 미국과 대만, 인도 등에서 규제하고 있으며 EU는 유럽의회, 유럽연합위원회 등 정책 결정 기관에서 일하는 직원의 휴대전화에 틱톡 설치를 금지했습니다. ‘빅테크의 갑질을 막아야 한다’는 세계적인 공감대가 형성됐으며 규제의 보편화도 피할 수 없다는 방증입니다.
규제 순기능만 있나
혁신 족쇄 될 수도
그 선두에 있는 EU는 빅테크 기업 규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EU는 DSA와 DMA 외에도 AI법(AI 활용 분야를 4단계 위험 등급으로 나눠 규제하는 법), 디지털네트워크법(DNA,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들의 망 사용료 법제화), 데이터법(제3자에게 데이터 제공 의무와 데이터 처리 사업자의 변경 지원 의무) 등의 법안으로 계속해서 기업들을 옥죄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해당 법안이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티볼트 슈레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학교 법학 교수는 지난해 ‘온라인플랫폼 규제 동향 국제세미나(Ⅱ)’에서 “DMA는 디지털 시장 경쟁 촉진하는 주요 동력인 혁신을 저해한다”이라며 “이는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산업 성장을 방해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효율적 규제? 차별적 부담 초래?
한국도 빅테크 규제해야 하나
우리나라는 가장 적극적으로 제도적 규제를 추진하는 국가 중 한 곳입니다. 일찌감치 전기통신사업법을 통해 규제를 시작한 바 있으며 현재는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플랫폼법) 준비가 한창입니다. 플랫폼 대기업을 사전에 지정해 시장에서의 독점력 행사를 막겠다는 점에서 DMA와 상통하는 면이 있으며, 이 후보군에는 구글과 애플 외에도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기업들이 포함됐습니다. 법안의 취지가 비슷한 만큼 비슷한 주장의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규제가 시장경제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며 국내 플랫폼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 글로벌 경쟁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 플랫폼 산업 및 기업의 혁신 위축이 벤처, 스타트업의 성장동력을 꺾을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정부는 초기만 해도 ‘민간 주도 플랫폼 자율 규제’를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권익위가 앞장서서 무려 ‘사전 규제’를 하려 합니다. 일선 현장에서는 갑작스러운 기조 변화에 혼란스럽다는 지적도 잇따릅니다. 규제와 자율, 지금 우리나라에 더 필요한 정책 기조는 어떤 것일까요? 세계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