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들어올리는 쾌거를 이뤘는데요. 세계 문학계 불모지였던 한국 문학이 2016년 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이후 조금씩 알을 깨고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토마토Pick에서는 세계 문학상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한국 문학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
김혜순 작가, 한국인 최초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
지난 22일 김혜순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습니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NBCC)는 이날 미국 뉴욕 뉴스쿨에서 열린 2023 NBCC 어워즈에서 ‘날개 환상통’의 영어판 팬텀 페인 윙즈를 시 부문 수상작으로 발표했습니다. 협회 측은 "한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동시대 작가가 새의 언어를 전달하는 강력한 시집"이라고 소개했습니다. NBCC는 미국 언론·출판계에 종사하는 도서평론가들이 1974년 뉴욕에서 창설한 비영리 단체인데요. NBCC는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등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문학상으로 권위가 높습니다. 앞서 2019년 김 작가는 그리핀 시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그리핀 시 문학상은 2000년 캐나다의 기업가 스콧 그리핀이 제정한 시 부문 단일 문학상으로는 세계적인 권위를 갖는, 국제적인 시 문학상입니다. 현재 아시아 여성 시인으로는 노벨 문학상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국 문학, 주변에서 중심으로
사실 한국 문학은 세계 문학사에서 변방에 불과했습니다. 한국 문학 역사는 130여년에 달하지만 세계에서는 소개된 바가 없는데요. 영어가 만국 공통어인 탓에 한국 문학을 번역하면 그 맛을 제대로 살리기 어려웠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1968년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타면서 이는 변명이 됐습니다. 자극을 받은 한국은 1974년부터 문예진흥원(현 문화예술위원회)이 ‘한국문학 번역지원사업’을 시작했는데요. 한국 문학 해외 소개는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00년대 초반 고은 시인이 외신으로부터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꼽힌 것을 들 수 있겠습니다. 민간과 정부 차원에서 번역 출판지원이 이뤄지면서 2020년 말 기준으로 한국문학번역원(정부)은 38개 언어권에 1911종을 지원해 40개 언어권에 1511종을 출간했고, 대산문화재단(민간)은 2021년 기준으로 22개 언어권에 455종을 지원해 292종을 출간했습니다.
한강 작가, 2016년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
2000년대 초반 고은, 황석영, 신경숙, 박완서, 이창동 등 많은 작가가 한국 문학의 씨를 뿌렸다면, 이를 결실로 맺은 것은 한강 작가입니다. 2016년 한 작가는 '채식주의자'라는 작품으로 세계 3대 문학상인 맨 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는데요. 한강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은 알바니아의 이스마일 카다레, 나이지리아의 치누아 아체베, 캐나다의 앨리스 먼로, 미국의 필립 로스 등 세계적인 작가들에 이은 수상이라는 점, 그리고 터키의 노벨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 중국의 옌렌커, 앙골라의 호세 에두아르도 아구아루사, 이탈리아의 엘레나 페란트 등 저명한 작가들과 경쟁한 끝에 영예를 안았다는 점에서 한국문학이 해외에서 거둔 가장 크고 값진 성과로 평가됩니다. 한 작가는 또 최근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작품으로 한국인 최초 프랑스 메디치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1958년 제정된 메디치상은 공쿠르상, 르노도상, 페미나상과 함께 프랑스의 4대 문학상으로 꼽힙니다.
발전하는 한국 문학
후보에 이름 올리는 한국 작가들
한강 작가의 수상 이후 세계 문학계에서 한국 문학이 차지하는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한국 문학은 계속 성장해나가고 있는데요. 최근 2년 간 주요 수상과 입후보를 정리해보겠습니다.
△2022년(4편 수상, 9편 입후보)
-손원평 '서른의 반격':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수상
-김금숙 '풀': 체코 뮤리엘 만화상
-김소연 '한 글자 사전': 일본 번역대상
-이영주 시 '차가운 사탕들': 미국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
-정보라 '저주토끼',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영국 부커상 후보
-김금숙 '기다림': 미국 하비상 후보
-황석영 '해 질 무렵': 러시아 야스나야 폴라냐 문학상 후보
-이혜미 '뜻밖의 바닐라': 미국 사라 맥과이어상 후보
-김숨 '한 명',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아일랜드 국제 더블린 문학상 후보
-김혜진 '딸에 대하여':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 후보
-이소호 '캣콜링': 펜 아메리카 문학상 후보
△2023년(2편 수상, 4편 입후보)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프랑스 메디치상, 에밀 기메상 수상
-정보라 '저주토끼': 미국 전미도서상 후보
-천명관 '고래': 영국 부커상 후보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아일랜드 국제 더블린 문학상 후보
-신경숙 '바이올렛':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번역문학 후보
아동 문학-만화에서도 강세
다양한 분야서 활약하는 한국 작가들
소설, 시 분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서도 한국 문학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동문학의 노벨상'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HCAA) 글 부문 최종후보(쇼트리스트) 6명에 이금이 작가가 포함됐습니다. 안데르센상 그림 부문에서는 이수지 작가가 2022년 수상한 바 있는데요. 글 부문에서는 한국 작가로서 최초입니다. 안데르센상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권위의 아동문학상 볼로냐 라가치상에서도 한국 작가의 강세가 두드러지는데요. 한국 작가들은 2004년 첫 입상을 시작으로 거의 매년 라가치상을 수상해왔습니다. 지난해에만 4명의 한국 작가가 상을 수상했습니다. 만화 분야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요. '만화계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미국 하비상에서 마영신 작가의 '엄마들'이 2021년 ‘최고의 국제도서’ 상을 받았습니다. '엄마들'은 지난 1월 ‘만화계의 칸영화제’로 불리는 유럽 최대 만화 페스티벌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 공식경쟁 부문 후보작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중대기로 선 한국 문학
포용성 더 넓혀야
2010년대 이후 세계문학시장에서 한국문학의 위상과 존재감은 사뭇 다릅니다. 한국 문화의 독특한 정서를 바탕으로 분명히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 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21년 7월 곽효환 한국문학번역원장은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말은 더 이상 쓰지 않겠다. 한국문학은 이제 세계문학의 당당한 일원으로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한다"며 방향성을 제시한 것은 적절해보입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한국 문학계의 오랜 특징인 '한국인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사상과 감정만을 나타낸 한국인의 글'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다원화와 다양성이 핵심 가치가 된 세계화 시대에서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은 외면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대한민국의 정체성 중 하나였던 '단일민족주의'도 사실상 해체된 가운데 분단된 남과 북의 문학, 한국인이 쓴 외국어문학, 외국인이 쓴 한국어문학 등을 과연 어떤 기준에서 바라보고 수용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포용할 것인지 대한 본격적인 토론과 합의도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