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코로나 밀어내는 동양적 음계, 선셋롤러코스터


3집 ‘SOFT STORM’…오혁 피처링 참여

크게 크게 작게 작게 2020-11-21 오전 12: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 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어떤 이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대만 밴드 선셋롤러코스터. 쳉 쿠오 훙(보컬·기타), 첸훙리(베이스), 로춘룽(드럼), 왕샤오슈안(키보드), 황하오팅(색소폰). 20일 인터뷰에는 쳉 쿠오 훙(가운데)이 임했다. 사진/모레코즈
 
잠시 아찔하고 기묘한 상상에 잠겨본다. 열대성 폭우로 휘감긴 타지의 어느 밤.
 
검은 먹구름이 일렬로, 자처럼 뉘여 있다. 현세와 사후의 선을 긋듯. 잠시 뒤 정전. 도시가 마비된다. 헬륨 빠진 풍선처럼 ‘슉’ 모세혈관이 바짝 쪼그라든다. 이런 공포감을 되뇌게 될지도... ‘당장 세계가 멸망 한다면?’ 
 
극단적 몽상 같지만, 한여름 대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루걸러 맞닥뜨리는 이 섬나라 사람들의 현실은 그렇다. 대자연의 광기 앞에 인류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안다. 촛불 켠 식탁 앞에서 그저 컵라면을 ‘후후’ 불어가며 모든 상황이 지나가길 기다려야 한다는 걸... 
 
20일 화상으로 만난 대만 밴드 선셋롤러코스터[Sunset Rollercoaster·落日飛車, 쳉 쿠오 훙(보컬·기타), 첸훙리(베이스), 로춘룽(드럼), 왕샤오슈안(키보드), 황하오팅(색소폰)]는 최근 내놓은 3집 앨범 ‘SOFT STORM’과 관련해 이 대만 특유의 문화부터 본보 기자에 설명했다. 
 
리더 쿠오는 “여름철 대만에서는 학교가 문을 닫고 정전이 되는 게 예삿일이 아니다”며 “촛불 앞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그것이 대만 특유의 ‘태풍 문화’”라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태풍 같은 해였지만, 그 촛불의 시간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악을 선사하고 싶었습니다.”
 
선셋롤러코스터 'Soft Storm' 앨범 커버. 앨범의 주 소재인 태풍이 코로나 행성으로 물든 지구를 연상시킨다. 사진/모레코즈
 
신보는 밴드가 전작부터 추구하던 ‘트로피컬 록’의 결을 잇는다. 따뜻한 햇살, 간간이 퍼붓는 소나기 같은 낭만이 음표로 부유한다. 열대 지역을 연상케 하는 후끈하고 달달한 사운드. 신디사이저 소리를 쌓아 올린 ‘웜톤’의 소리를 근간으로 퓨전과 라틴, 펑크(Funk) 장르를 섞고 ‘오리엔탈리즘’ 정서(동양풍 멜로디)를 고명처럼 얹었다. 마빈 게이나 스모키 로빈슨의 사운드 영향도 아른거린다.
 
30여분의 길지 않은 앨범을 돌리면 흡사 ‘태풍의 눈(eye of typhoon)’ 안에 있는 환상이 인다. 파괴적 풍속의 바깥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물든 오늘날 세계라면, 바람 없는 고요한 안은 조용히 내면을 관조하는 개인, 자아를 연상시킨다. 
 
선셋롤러코스터. 쳉 쿠오 훙(보컬·기타), 첸훙리(베이스), 로춘룽(드럼), 왕샤오슈안(키보드), 황하오팅(색소폰). 20일 인터뷰에는 대각선으로 누워있는 멤버 쳉 쿠오 훙이 임했다. 사진/모레코즈
 
‘SOFT STORM’의 부제 역시 ‘태풍이 강타한 도시 속 사람들의 이야기’. 화자는 사랑과 꿈, 이별, 성취, 갈등, 씁쓸한 추억 같은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포근하되 미니멀리즘적인 멜로디에 실어 나른다.
 
“이번 앨범은 원래 미국 LA에서 완성이 됐어야 하는데 반 정도 작업을 했을 때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단되는 사태를 겪었습니다. 이후 본래 선셋의 달달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느껴지는 사운드에 조금 더 어둡고 절제된 소리(존 듀 프로듀서 영입)를 추가하는 실험으로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선셋롤러코스터. 쳉 쿠오 훙(보컬·기타), 첸훙리(베이스), 로춘룽(드럼), 왕샤오슈안(키보드), 황하오팅(색소폰). 사진/모레코즈
 
마지막 트랙에 실린 곡 ‘Candlelight’는 앨범 전체를 엮는 주제가 같은 곡. 세계 민요에서 표준이 되는 5음계가 동양풍의 성스러운 정서를 곡 전체에 주단처럼 깐다. 여기에 국내 밴드 혁오의 오혁(보컬과 기타)이 특유의 처연하면서도 몽환적인 성음의 코러스를 덧댔다. 
 
“곡 자체는 촛불이 밝혀주는 빛 속에서 폭풍우를 견디는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당장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 같지만 서로에겐 서로가 있다. 폭풍우가 지나면 모든 것은 흐릿한 꿈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바람과 함께 모든 것이 사라지듯 말입니다.”
 
오혁과 협업에 대해 얘기를 나눈 것은 올해 3월 도쿄에서다. 처음으로 데모를 들었던 오혁과 이메일, 문자로 협업을 주고 받으며 이 곡을 완성했다고. 슬로우모션으로 한국의 장례 문화가 흘러가는 뮤직비디오도 인상적이다. 꽃 장식으로 둘러싸인 상여와 흰 저고리를 두르고 우는 아낙들, 노란 리본, 옥춘(玉瑃)….
 
“한국 전통 장례 풍습에는 대만에서 느끼지 못하는 아름다운 장엄함이 있는 것 같아요.”
 
'candlelight'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한국의 전통 장례 풍습. 사진/유튜브 캡처
 
‘코로나 행성’으로 물든 오늘날 지구를 ‘태풍’이라 은유하면 음악은 꽤나 시의적절하게 들린다. 
 
쿠오는 “음악은 문화적 배경이나 자란 환경이 달라도 서로의 영혼을 매개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 형태의 언어”라며 “음악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한 감정이나 메시지를 찾아내길 바란다. 그것이 때론 대화보다 더 아름답고 진실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2011년 데뷔한 밴드는 사실 벨벳 언더그라운드, 루리드, T-렉스, 데이비드 보위의 음반을 좋아하는 록 키드다. 데뷔 초까지만 해도 헤비메탈 사운드를 연주하곤 했다.
 
“처음엔 창작 집단이나 크루에 가까웠고 이젠 우리만의 색깔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해질녘 타는 롤러코스터처럼 느긋한, 흐려지는 태양빛 속으로 떠나는 결말 같은 음악을 하고 싶어요.”
 
대만 밴드 선셋롤러코스터. 사진/모레코즈
 
마지막으로 이번 앨범은 어떤 여행지에 가까울까 물었다. 
 
선셋롤러코스터에 탑승해서 자신 만의 추억이 만들어진 도시 속으로 여행을 당장 떠나세요! 해가 지고 밤이 되면 무의식 속 폭풍우가 들이닥칠 겁니다. 그 폭풍우는 당신을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이 사이키델릭하고도 따뜻한 여정으로 스스로 치유하고 이해할 수 있길...”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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